농촌에서 도시로 급속하게 밀려드는 인구로 도시는 주택난이 발생하였고, 주택난 해소를 위하여 도시외곽의 저렴한 부지를 개발하면서 도시의 확산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1980년대 도시계획 이슈는 개발 가용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가용지 개발에 대비하여 도로개설을 어느 시기에 얼마의 재원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는게 주류였다. 그러나 인구감소시대,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여 과거와 같은 성장위주의 도시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속가능 차원에서 도시재생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고성장 시대의 도시계획은 도로나 상하수도 등 토목분야를 중심으로 평면적 계획으로 수립되면서 더 많은 공원, 더 많은 도로 등을 도시공간에 배치하는 것이 좋은 도시계획의 요건이었다.
이러한 도시발전 과정은 서구에서도 나타났다. 1780년대 영국은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주택난, 교통난, 식수․대기 오염 등 도시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그 시대의 최고의 도시학자인 하워드(Ebenezer Howard) 선생이 전원도시 이론을 내놓았다. 하워드는 도시의 혼잡을 구제하려면 도시를 확장해서는 안되고 도시의 기능을 분산시켜야한다고 생각하였다. 도시 한가운데 인구 5만 8천명의 모도시를 중심으로 모 도시 주변에 인구 3만 2천명씩의 6개의 전원도시를 만들고 도시와 도시사이는 도로나 철도로 연결하여 총 28만명의 도시를 만들자는 이론이다. 이것이 기준이 되어 우리나라는 분당. 일산 신도시가 만들게 되었고, 일본에서도 열광적으로 수용하여 철도회사들이 기차역 주변을 개발하면서 전원도시 운동을 적용하여 1920년경 도쿄와 오사카 근처의 조용한 시골마을에 주택단지를 많이 건설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여건이 변화되어 외곽확산보다 기존도시를 살리는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이라든가 어반빌리지(urban village) 그리고 압축도시(compact city), 협력적 계획(collaborative planning) 이론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속에서 우리나라도 공간의 질은 물론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나라 가치에 맞는 적합한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요건을 건축적 관점에서 모색하는 것은 의의가 있겠다.
첫째, 서양적 사고체계가 아닌 한국인의 삶을 담을 수 있는 한국적 사고체계에서 계획을 접근하여야 하겠다.
서구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계획 개념에 의하면 의사결정자의 뜻과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같은 계획체계를 떠오르게 한다. 이에 반하여 한국의 사상은 인간을 위시한 이 세상 모든 존재를 소수 몇 사람의 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로 보지 않고 다양성과 다면성의 원리가 있다. 도시공간을 구성함에 있어서 먼저 중심축을 상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토지를 분할하고 주요 기능을 배치하는 것은 동․서양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축(axis)의 역할에 있어서는 동양도시에서는 정신적 상징성이 강조되었음에 비해 서양도시의 경우는 시각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공간구성의 기법면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이처럼 서구적 사상과 한국적 사상이 다른데 우리의 도시계획은 서구적 도시계획에 익숙해있고 그러한 도시계획이 만든 체계안에서 건축계획도 적응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도 도시계획을 처음 공부하던 시절에 이런 점을 깨닫지 못하고 서구의 도시계획을 정석(定石)으로 여기고 실무에 적용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현 세종시)의 마스터플랜 수립 초창기 시절에는 도시계획의 이론과 실제가 일찍부터 발달한 영국이나 미국의 이론인 전원도시(garden city), 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 등을 공부하며 그것을 도시계획 실무에 접목하기 위하여 시도한 적이 있다. 그리고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매뉴얼에서 규정한 공식에 대입하여 청사진형 도시계획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실정에 맞는 공동체 계획을 만들기 위하여 고민한 적도 있다. 다행히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계획성과를 보면 도시전체를 다층적인 구조를 가진 생활권으로 분리하여 도시조직을 마련하였고 커뮤니티와 생태적 측면에서 적용하여 나름대로 한국적인 도시계획을 도입하였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실무과정을 통하여 한국적 도시사상은 배타적이지 아니하고 공존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사회적, 문화적, 공간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적인 도시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키워드중에 하나는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인 도시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주민속에 잠재되어 요구하고 있는 의식을 끄집어내어 도면으로 언어화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건축사는 인간의 생활을 다루고 인간을 담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있으므로 현 시대의 도시계획가이자 도시기획자로 나서야 되겠다.
둘째, 우리는 21세기 환경에 살면서 아직도 20세기 계획 시스템에 머물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본다.
근대 도시계획은 인구의 과도한 집중으로 발생한 도시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생산원리를 기반으로 효율성과 합리화, 규모의 성장을 추구하였다. 그 시기의 도시계획을 ‘20세기 도시계획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시대적 조류와 함께 새로운 지구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국제적인 도시 간 경쟁, 도시구성요소의 변화와 함께 도시의 구조적 전환이 크게 나타나는 ‘21세기 도시계획 시스템’으로 변화되었다.
20세기 도시계획은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우선적으로 개발하고 관리하는데 주로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양하게 변화되는 21세기를 맞이하여 환경․복지․문화 분야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유형의 도시문제를 효율적으로 대처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 지방자치제와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면서 도시계획은 그 목표나 운용 면에서 커다란 도전을 맞고 있으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표면화되고 있지 않고 있다.
20세기 산업화 이후 토지의 용도를 주거・상업・공업지역등으로 구분하게 되면서 도심지역은 공동화 현상이 교외지역에서는 소득수준에 따른 계층분화가 심화되었다. 뉴어바니즘에서는 그 대안으로 주거・상업・업무기능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근린주구 또는 직주균형을 제시한다. 또한 다양한 계층이 소통할 수 있는 열린공간(open space)을 곳곳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교통수단을 다양화하고 보행자 중심의 도시설계가 이뤄지면 도시구조 자체를 바꿀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뉴어바니즘은 기존도시에 대한 반성을 통해 도시를 재구성, 인간과 환경 중심의 공간으로 되살리는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뉴어바니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하는 것을 이웃관계 회복을 통한 커뮤니티(지역공동체) 활성화이다. 뉴어바니즘 운동을 통한 도시재편성의 방향은 생태도시이다. 생태도시는 미래세대를 위해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자연친화적 주거환경 도성 등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인 친환경건물이나 자동차가 아닌 사람중심의 도로, 바람의 효과와 오염의 영향을 고려한 건물배치 등이 필요하다. 뉴어바니즘과 유사한 개념으로 대중교통 지향형 개발(Transit Oriented Development : TOD)이 있다. TOD는 도시의 무질서한 평면적 확산을 막고 기성시가지에서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승용차 의존적인 도시에서 탈피하여 대중교통 이용에 역점을 두고자 하는 도시개발방식이다. 중심상업시설이나 대중교통 정류장으로부터 400~600미터 반경내에의 도심지구에 혼합토지이용을 통하여 사무실, 오픈스페이스, 공공시설을 유치하고 녹색교통수단인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 등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밀도 토지이용 페턴 및 교통연계체계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대중교통 지향형 개발기법을 활용한 도시개발의 유형으로는 역세권 개발, 근린주구개발 등을 들수 있다..
플로리다(Florida), 랜드리(Landry), 사사키 마사유키 등과 같은 창조도시론자는 매력적이며 문화적으로 활력있는 도시가 21세기의 경쟁력있는 도시이며 국내외로부터 우수한 인재와 좋은 기업을 끌어들이면 도시의 공간과 삶의 질의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미국의 플로리다(Florida)는 3T(Talent, Technology, Tolerance)를 강조하여 창조도시로 발전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질적 요소에 대한 높은 수준의 개방성과 관용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2015년 광주광역시는 아시아 문화중심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이질적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성이 어느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시기에 입체적인 공간감각을 가지고 있고 도시기획자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건축사에게는 도시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도시기획자로써 건축사에게 공공성, 재미, 새로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하며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의 욕망을 조직하는 일이 필요하다. 크고 작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푸는 것도 도시기획자의 큰 역할중에 하나일 것이다. 다양한 삶들이 서로 얽히고 의지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그곳의 장소성을 만드는 도시계획이 21세기의 도시계획 시스템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건축사가 서 있기를 기원한다.
셋째, 도시재생형 도시계획에서는 입체적 공간감각을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도시계획시스템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조류에 따라 앞으로 도시는 장소적 특성을 지니고 도시마다 생태적, 문화적, 사회경제적 이질성과 특성이 존재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전국적인 획일화된 계획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일례로 획일적이고 단순한 규제가 아닌 지역별 특징을 활용하는 토지이용계획이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유연한 관리방침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건축법」에서는 ‘특별건축구역’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입지규제최소구역’을 새로이 도입한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러한 제도 개선의 근원은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건축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은 더욱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확장형 도시계획 체계에서는 건축사의 참여가 많지 않은 실정이었다. 그러다보니 건축계획을 할 때 도시계획적 결정을 우리의 결정,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 나의 자유를 묶는 결정, 빠져나갈 수 있으면 빠져나가야 하는 결정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이었다.
도심재생이 도시계획의 주류가 됨에 따라 평면적 감각으로는 도시문제를 풀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도심재생 계획과정에 입체적 공간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건축사는 어느 전문가보다 입체적 감각과 함께 사업성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축사의 도시계획 분야로의 활발한 진입을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