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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Jan 29. 2019

조금 다른 출근길,  그리고 오늘의 기록

을 빙자한 서울나들이 일기

정말 오랜만에 서울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15분 언저리의 출근길일테지만, 아침부터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을 하였다. 출근시간대라 당연히 버스에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서서 가야 했고, 꽤 추웠던 아침날씨이니만큼 기사가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서 그런지 찜통처럼 더웠다. 몸에 열이 많아서 히터를 틀면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때문에 가방을 바닥에 내리고 패딩을 벗어서 손에 들었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한 세월이 인생을 합쳐서 1년 남짓하지만, 양화대교와 사당역을 거쳐야 했던 험난한 경험이 있었기에 출퇴근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내려 9호선을 타는 코스였기에 9호선의 악명이 자자해서 워낙 걱정이 되었다.

출근길 광역버스는 마치 바이러스가 퍼진 듯 모두가 수면에 빠져있었고,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때는 그닥 막히지는 않았지만 청계산입구부터 급격히 막히기 시작하여 서울시내까지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뭔가 지루한 느낌이 들어 이른바 '노동요'로 알려진 신나는 곡들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걸 들으니까 마치 내가 세상 짱이 된거 같고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왜 이런 카테고리의 곡들이 인기를 끄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코엑스는 가도가도 길을 모르겠어서 한참을 헤메다가 겨우 세미나 장소에 도착했다. 코엑스 리모델링 하기 전에 신촌에 살았음에도 엄청 자주 가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눈감고도 길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다 외웠었는데, 잠깐 다른 지방에 살다 온 사이에 죄다 리모델링 되어 있어서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리모델링 이후에는 아무리 가도 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져서 좌절했다. 나름 길 잘찾는 편이라고 자부하는데도 아직도 몇년째 코엑스에서는 표지판 없이 절대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막 표지판 화살표 방향이 이리바뀌고 저리바뀌고 어지러워서 중간에 서서 ??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별마루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건 인식하고 있지만, 그 많은 브랜드들의 위치와 방향을 모두 기억할 수가 없어서 (예전같으면 노력이라도 했을텐데 이젠 안함...어차피 안살거니까) 몇년째 길을 못찾고 헤매는 중이다. 바깥 풍경이라도 보이면 큰 건물 기준으로 스캔이 가능한데, 심지어 밖도 안 보이는 구조라 도저히 길을 못외우겠다 좌절...

코엑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겠지만 그들이 이리저리 물흐르듯 움직이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매일 느끼듯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도 똑같은 하루였겠지만, 그 모습마저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도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멍한 눈빛으로 흘러가듯 차에 실려 출근을 하겠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내 모습을 본다면 좀 다른 느낌을 받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입사원 시절 사수님이 '앞으로 99프로는 똑같은 날들이 이어질테지만 그 속에 1프로의 일탈이 너의 인생을 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다. 그 말대로 99프로의 평범함을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지만, 시간과 돈의 제약이 있는 직장인이 어떻게 매일매일 새롭고 특별한 경험만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이 바로 그 1프로의 날이고 이런 날들이 기억에 남고 남아 내 일상을 흥미롭게 만들어 줄 기억이 될테지.


어쨌든 오늘도 조금 헤매고서야 세미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섹션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중간중간 딴짓을 좀 했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서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명실상부 올해의 대세가 될 자율주행차의 발전,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양상의 변화,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과 4차산업혁명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 등, 세상에는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개발자로서 이런 변화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하나씩 글을 써보고 싶다. (소개글에 문과출신 개발자라고 써놨는데 개발이야기는 안 쓰고 다른 이야기만 잔뜩 써서 뭐하는 사람인가 싶을거 같음. 닉값해야지.)


대학 2학년 때 소비자트렌드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소비자학을 처음 복수전공 하는데 하필 2학기때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1학년 기초과목부터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없이 기초가 아닌 과목들을 수강해야 했다. 그리고 기초과목은 전공진입하는 학생들이 많이 듣기 때문에 수강신청도 개빡셌음. 소비자 트렌드로 유명한 모두가 알고 있는 분이 계신데 그분은 샤대에 계시고, 암튼 그분이 쓰시는 책과 비슷한 내용을 배우고 트렌드를 도출해보는 팀프로젝트를 하는 과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원래 전공과 다른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굉장히 흥미롭게 남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학위까지 딸 수 있었다(그리고 기초도 안듣고 다짜고짜 수강부터 했었기에 부족했던 나를 도와주었던 수많은 마음 따스한 소비자학과 선배/후배/친구들. 팀플이 워낙 많은 과 특성상 복수전공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 많은데 물론 연락은 안되지만 아직까지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우리 팀은 서울시내 건축물 트렌드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서울시내를 엄청나게 돌아다니면서 건물들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 우리 팀이 주목했던게 명동극장과 을지로 SK사옥, 부티크모나코 등 당시 완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들이었다. 건축물같은 경우에는 착공부터 완공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워낙에 많이 드는 분야라 그 특성 상 트렌드를 아주 민감하게는 따라갈 수 없다는 한계가 있으나, 그걸 차치하고라도 건축물 트렌드가 소비자의 니즈와 시대에 발맞추어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굉장한 흥미를 느꼈었다. 명동극장의 경우에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 을지로 SK 사옥의 경우 고객중심 서비스 정신을 담고자 하는 열망, 부티크모나코의 경우 자연과 도심/첨단의 조화(여기는 심지어 위치도 강남역임)를 표상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런 식으로 산업별로 변화하는 트렌드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IT업계 또한 분명히 소비자들의 트렌드와 니즈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IT의 경우 그 어떠한 분야보다도 이러한 변화가 빠르다.

처음 개발을 배울 때는 AI가 실제로 구현되기 시작했고(인공지능의 개념 및 가능성 자체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대두되기 시작했음), 조금 지나자 IoT가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이제는 이것들마저도 오래된 소재처럼 느껴진다. 이제 이것들로 무엇인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결과물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이 자체만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자동화를 필요로 하는 분야 그리고 이미 자동화가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분야들에서도 사람 손을 가급적 덜 타게 하도록 개선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느껴진다. 이러한 발전들로 인해 분명 사라질 직업들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많이 똑똑해진다면 나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을 통한 가치 창출을 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의 변화에 내가 어떻게 하면 따라갈 수 있을지. 그리고 내 직업이 만약 사라질 직업 중 하나라면 어떻게 경력개발을 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오랜만에 티피컬한 업무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지루하지만 나름 신나는 출근길, 정신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개념들 등. 지루했던 일상을 환기할만한 많은 일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취준할 때부터 기술영업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영업을 하려면 설비와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못하고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분이 '테크니컬 라이팅'에 대한 이야기를 하셔서, 그럼 우리 테크니컬 라이팅을 배워서 나중에 노후대비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 순간 미래는 IT와 IT를 다루기 위한 툴들에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툴'이 의미하는 바는 1차적으로는 설비나 소프트웨어가 될 수도 있으나, 생각해보면 2차적으로 이 툴들을 다루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즉 언어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실제로 자신들의 회사에서 구현한 기술을 알리기 위한 일들을 하고 계신 분들을 실제로 보니 나도 미래에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솟아 올랐다. 빠르게 변화하는 IT 세상의 트렌드를 민감하게 따라가고, 나중에 이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내가 잘 할수 있는 방법을 통해 이를 많은사람과 나누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막연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해 나가면 못할 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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