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어떤 기록으로 남을까
우리는 어릴때부터 역사 공부를 참 많이 해왔다.
최근에는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초중고 사회 시간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역사를 배워왔고, 시험도 치뤄왔다. 심지어 기업 입사에서도 역사자격증이 필수가 되고 있는 추세이다.
한때는 역사교육과를 지망할 정도로 역사에 열정을 태우던 과거도 있었다. 그랬기에 최근 '역사'라는 키워드와 관련된 것들을 접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 이 시점에서, 역사를 다시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어렴풋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알고싶었던 역사는, 가깝지만 먼 나라인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것이었다.
고교시절 국사책의 주석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외워버릴 정도로 한국사를 열심히 배웠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일본이라는 키워드는 정말 자주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정말 밀접한 연관이 있고,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 항상 곁에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역사는, 칠지도와 관련된 논란, 조선시대 왜관에서 일본의 상인들이 서적과 인삼을 사가고 그 대가로 은을 지불했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잦아졌던 왜구의 침입 그리고 임진왜란, 경술국치, 일제강점기 등. 교역 관련을 제외하곤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에서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인으로선 당연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일본'의 역사인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들은 분명 조선시대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서적을 사가고(서적을 산다는 것은 지식체계, 사상, 정신문화 등을 수용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불교 및 성리학 등 각종 사상을 배워갔던 민족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은 과학기술로 무장하여 칼과 총을 들고 겨누었고, 지배하는 입장이 되었다. 단지 지배층의 메이지 유신 단행 등 일순간의 변화라고는 할 수 없었던 강력한 원동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알고 배운 역사의 흐름에서, 일본의 '근세'시대에 해당하는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세시대란? 동북아시아에 존재하는 역사의 발전 과정 중 하나로,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가, 일본에서는 에도(현재의 도쿄)로 막부세력이 이전을 하였던 에도시대가 이에 해당한다. 중세시대 봉건적 의식 및 제도가 존재하나, 근대적 사고와 제도의 도입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도입되어 사회의 변화가 감지되었던 시기이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주간지 같은 곳에서도 최근 일본 천황 승계에 따라 일본 왕실의 역사 등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일본은 선진기술과 문물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왕실이 유지되고 있는 특이한 사회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이, 바로 옆나라임에도 이런 모습들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왕실이 일본 역사에 부여하는 여러 상징성 등을 고려해 보면, 왜 아직까지도 왕실이 건재하게 유지되는지 알 수 있다. (유럽에도 다수의 국가에 왕실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 왕실의 권위와 위엄은 왕실의 '재력'과도 상당부분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이는 특히 국부(國富)와의 연관이 크다고 하는데, 일본 왕실도 이에 있어 서양의 왕가들에 뒤지는 편은 아닐 것이다.)
하여튼 딴 말이 길어졌는데, 요는 역사를 알아야 과거의 실수를 두번 범하지 않고, 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특히나 한국인으로서 한국사와 실타래마냥 얽혀있는 일본의 역사를 절대 간과할 수 없었고, (어쨌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근대 이후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의 역사를 자랑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버블시기도 있어왔지만.
또한 일본에는 백여년 혹은 그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기업들도 꽤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그룹이 약 80년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시작, 1938년 창립) 물론 미처 알지 못하는 오랜 기업들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는 일단 삼성그룹을 꼽을 수 있다. 아직까지는 명실상부한 '백년기업'이 없으니, 백년기업을 가능케 한 일본의 '장인정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태껏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일본의 근세사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갖고 도서관을 뒤져서 갈증을 해소해 줄 만한 한권의 입문서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라는 책이다.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일어일문학과나 사학과 학생이 아닌 이상, 학교에서 일본 역사에 대해 배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 매니아였다고 자부하는 나도 그랬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상처와 오욕을 안겨준 기억을 잊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일본의 발전과 근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한번쯤은 배워보고 싶었다.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면 찾아서라도 배우면 될 것이다.
하여튼 이 책을 우연히 접하고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임진왜란 이후 막부정권이 바뀌고(우리나라도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사회의 양상이 급격하기 바뀌던 시기였다) 전쟁이라는 큰일을 치르고(무사의 나라이기에 전생은 국가 전체를 건 빅 이벤트였을 것이다) 수도를 천도하면서 급격하고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의도한 것도, 의도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근대화의 기틀을 쌓을 수 있었던 변화의 싹들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국의 물자와 자원과 인력이 수도인 에도(현재의 도쿄)로 몰려왔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도로교통 및 도시의 발전과 함께 근대화의 본격적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실학'이 태동했고, 많은 학자들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의견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수레'의 중요성을 거론한 것이다. 즉 물자와 사람이 오가기 위한 도로교통과 물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에야 트럭이 전국을 하루만에 연결해 주지만(택배가 하루면 오는 놀라운 세상!)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전통적으로 도로교통에 유리한 나라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 기술로는 수레로 산을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운(배로 물자를 실어나르는 물류의 형태)이 발달했지만, 조운은 육로교통에 비하면 효율성과 신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고가 한번 나면 많은 인력과 자원에 손실을 입는다(한번에 많은 물자를 실어나르다보니). 서울 광흥창도 예전에는 쌀을 배로 실어 날라 쌓아두던 곳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통분담률 중 도로교통이 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보면, 지난 이백여년간 도로교통이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아주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따지고보면, 만약 정말로 박제가의 '수레론'이 지형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현되었으면 우리에게도 근대화의 역사가 좀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아시아 삼국의 국가의 명운을 가른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도로교통이었다니. 그리고 그것이 하필 우리나라의 지형때문에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니.
4차산업 혁명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향후 몇백년간의 국가의 명운을 가를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세대는 이 역사의 변곡점에서 존경스럽고 고마운 조상으로 남게 될까, 원망스런 조상으로 남게 될까. 역사를 두고 생각해보면 국가정책적으로 어떤 기술과 학문을 익히고 발전시켜 나갈지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역사 앞에서 겸허해지고 또 겸손해지고, 하루하루를 허투루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