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여행과 뉴욕지하철
1904년부터 운행되어 온 뉴욕지하철 은 지금 이 시각에도 쉬지 않고 달리며 24시간, 뉴욕 시민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뉴욕의 지하철은 초창기 지하철역 출입구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새로 건설한 노선 아래에 예전 노선과 플랫폼을 그대로 보존하는 등, 오래된 것을 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운영방식으로도 유명합니다. 해가 다르게 급변하는 뉴욕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클래식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역사유적급 지하철역을 소개합니다.
사우스페리 지하철역은 뉴욕 지하철 1호선의 종점이자,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관광객,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맨해튼으로 통근하는 거주자, 주변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월스트리트)의 회사원까지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드는 터미널과 같습니다. 가까운 R호선 화이트홀 역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역 입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터미널이, 10분 거리에는 자유의 여신상 크루즈 탑승장이 있어 지하철에서 배로 갈아타는 방식입니다.
볼링그린은 배터리파크 북쪽의 작은 공원의 이름입니다. 1733년에 만들어진 이 공원은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공원이자, 뉴욕이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리던 초창기에는 야외 볼링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배터리파크와 연결된 볼링그린역의 남쪽 출입구는 20세기 초 지하철역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배터리파크와 자유의여신상 표지판을 따라가면 고풍스러운 역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독특한 문양의 철판 지붕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월스트리트 역(4,5호선)입니다. 나뭇잎을 상징하는 패턴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용의 단단한 비늘을 연상시킵니다. 밖으로 나서면 트리니티 교회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교회 바로 맞은편이 월스트리트의 입구.
아래 사진처럼 건물 지하 입구 벽 한쪽에 사인보드와 글로브(뉴욕 지하철역 입구를 표시하는 원구)를 세워놓은 것이 전부지만, 브로드웨이를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옛 고층건물의 지하와 연결된 입구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 소개된 다른 지하철역과 달리 뉴욕에서 가장 낡았던 풀턴 스트리트 역을 새롭게 신축한 교통허브입니다.
월스트리트 부근의 금융가(파이낸셜 디스트릭트) 인근에는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이 몰려 있으나 환승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매우 불편했습니다. 기존의 4,5호선 풀턴 스트리트 역은 오랜 공사기간을 거쳐 2014년 말, 뉴욕 시내 곳곳으로 연결된 8개 노선을 통합한 첨단 환승센터인 풀턴 센터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로어맨해튼의 교통 허브라는 풀턴센터에는 쉑쉑버거를 비롯한 뉴욕의 유명 업체와 쇼핑몰을 입점시키고, 향후 월드트레이드센터까지 지하로 연결할 계획입니다.
브루클린 브리지-시티홀 역은 지하철 역사 박물관과도 같습니다. 뉴욕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고층건물인 뮤니시플빌딩 오른 편에 초창기 지하철역 입구를 그대로 보존하였고, 역 내부에는 과거 지하철 궤도와 플랫폼도 남아 있습니다.
동네 자체로도 클래식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패스(Path 뉴욕-뉴저지 통근열차) 역이 하나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역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라 혼동하기 쉬운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패스 역에 들어서면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1908년 2월 25일에 오픈한 이 역은, 월드트레이드센터 Path역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던 2000년대 초반에도 평소 두 배에 달하는 통근 인파를 오롯이 감당해냈습니다.
아주 좁고 낡은 통로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교통당국은 새로운 입구를 하나 더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오래된 주변 건물의 훼손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로 확장 계획은 무산되었고,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Path 역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건축대학 쿠퍼 유니언 앞에 있는 아스토르 플레이스 역은 1904년에 개통된 이래, 이스트 빌리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업타운 방향의 입구는 옛 뉴욕 지하철의 출입구(Kiosk)를 그대로 보존한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의 키오스크는 뉴욕 전역에 28개 정도 있었으나 1960년대부터 차츰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다행히 1986년, 아스토르 플레이스 역이 리노베이션을 거치며 예전의 클래식함을 복원했고, 현재 뉴욕의 역사유적으로도 등록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중절모를 쓴 신사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숙녀가 거리를 거닐던 그 시절의 뉴욕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는 역입니다.
14th Street 유니언스퀘어 역에 정차하는 지하철 노선은 무려 7개! 이로 짐작해볼 수 있듯 유니언스퀘어 역은 뉴욕의 대표적인 환승역입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유니언스퀘어 지하철역을 이용한 승객은 35,677,468명- 뉴욕 지하철 중에서 네 번째로 분주한 역사라고 합니다.
맨해튼을 세로로 관통하는 브로드웨이와 파크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에 있어 "유니언 " 스퀘어라는 이름을 가진 공원이 있습니다. 미드타운이 시작되는 14th Street 선상에 있으며 여러 도로가 만나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유니언스퀘어는 오래전부터 시위 장소로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1882년 9월 5일,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브로드웨이를 따라 행진하다가 유니언스퀘어에서 집결했던 사건이 미국 노동절의 기원인데요, 이를 기념하여 1997년 공원 전체가 국가 역사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 등재되기도 했죠. 공원 입구에는 조지 워싱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1904년에 세워진 어퍼 웨스트의 72St 역사는 매우 독특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보여드린 로어 맨해튼의 볼링그린역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는데, 이런 형태의 지하철 역사를 컨트롤하우스(Control House)라고 부릅니다. Astor Place처럼 간단한 형태의 키오스크로 충분치 않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이러한 컨트롤하우스 역사를 세웠습니다. 백 년 전 지어진 지하철 플랫폼인지라 지상까지 오르는 계단의 폭이 비정상적으로 좁아서 지나다닐 때 주의해야 합니다.
똑같은 역 이름이지만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A, C 노선 72St 역은 고급 맨션 다코타 하우스의 지하로 곧바로 연결됩니다. 존 레넌이 살던 바로 그 맨션인데요, 일반적인 '주택'에 지하철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지하철 글로브 표시만으로 역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입구입니다.
맨해튼 중심부에서 벗어난 190St에는 방공호를 연상시키는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특히 Bennett Avenue와 연결된 출입구는 지하철 플랫폼보다 낮은 높이에 있어서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밖으로 통하는 구조입니다. 맨해튼 북쪽에 있는 이 역을 소개하는 이유는,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인 클로이스터스를 방문할 때 이 역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 클로이스터스 미술관이 있는 Fort Tryon Park로 가려면 방공호 쪽이 아닌 반대 쪽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수년간 뉴욕 시내를 일일이 걸어 다니며 취재한 포스트입니다. 현실 속 뉴욕 지하철이 마냥 낭만적일 수는 없겠지만, 뉴욕여행 중 소개해드린 역을 지날 때, 한 번쯤 생각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여행작가 제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