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은?
세 식구 저녁 식사를 마치고 편히 넷플릭스나 볼까 하는 참이었다.
아들이 뉴스가 있단다.
워낙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하는 아이이니
그럴려니 하며 생각의 반쯤은 볼만한 영화 없나? 였다.
오래간만에 미국 영화나 한 편 볼까?
"나 여자 친구 생겼다!"
나는 느꼈다. 내 동공의 흔들림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기저귀를 3살이 넘도록 차던 아이가 여자 친구?
반사적으로 아내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눈으로 물었다.
아내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WHAT! YOU HAVE A GIRLFRIEND?"
나는 급히 티브이를 끄고 리모컨을 내려놓는다.
뭐하는 애야? 인종은? 국적은? 여자 맞아? SNS 친구 아니야?
아무 말이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내가 나선다
어떻게 만났어? 어디 살아? 나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도찐개찐 같은 질문
아들이 정신없는 부모를 애써 진정시키며
부끄러운 듯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같은 학교 다니는 아이고 몇몇 클래스를 같이 듣다가 친해졌단다.
"여자 친구 맞아? 여사친 아니고?" 참지 못하고 내가 또 끼어든다.
"사진 갖고 와 봐! 어떻게 생겼어!"
아들이 전화기를 뒤적이다가 사진을 보여준다.
급히 머리를 디밀다가 아내와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뭐야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졌잖아!"
"다음에 다시 찍어 와 봐!" 아빠가 볼 줄도 모르는 관상을 보려 한다.
아무튼 정신이 없다. 정신없을 이유가 너무 많다.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로 마무리했지만 꺼림칙하다.
하필 지금?
내년이면 대학 갈 텐데 그때 사귀면 안 되나?
늦은 밤, 아내와 아들이 침실로 들어가고
거실에 혼자 남았다.
내가 아들 나이였을 때를 생각한다.
옛 일기를 꺼내 읽는다.
공부 빼고 뭐든 지기 싫어했던 나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 던 나
부모가 하지 말라는 걸 골라하던 나
친구가 전부였던 나
변덕이 최고였던 나
아이는 지금 한국의 고3과 같은 시기라 이성교제를 막고 싶지만,
어쩌겠나? 말리면 숨어서 몰래 만날 걸 아는데..
할 수 없다! 나와의 타협, 쿨한 척하기로 한다.
이성교제를 윈윈(WinWin)으로 만들어라!
서로에게 도움이 돼라!
말처럼 쉬울 리가 없지만.. 말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
하나마나한 말을 또 하겠습니다.
나는 고3 때 독서실에서 만난 선주, 재아, 수경과 아직도 친구로 지내잖아..
갑자기 재아가 생각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살아 있었다.
고3 때 독서실에서 만난 사이,
자식 낳으면 절대로 독서실은 보내지 말자고 하던 사이
그 당시 독서실 다니던 애들 중에 대학 제대로 간 애 없었다.
최소 재수 또는 그 이상
그리고 35년이 흘렀다.
이쯤 되니 재수, 삼수 그 이상이 건 지금의 행복에 큰 영향은 없다고 생각된다.
얼떨결에 이민자 된 사람마저도 흔하다.
아들이 이성 친구를 만나며 배우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새벽 녁 나 자신을 이해시킨다.
아들 여자 친구의 인종?
인종은 나랑 같네요....
임청하, 관지림, 장만옥, 호혜중, 왕조현의 나라에서 왔다는데,
호들갑 떨 필요 없겠지요?
가슴이 허한 느낌은 기분 탓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