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비정상은?
어릴 적 외갓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여섯일곱 살, 같은 또래의 사촌들과 빙 둘러앉아
떠들어 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호통을 치셨다.
"아니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아직도 왼손으로 해!"
주눅 든 사촌이 잽싸게 왼손의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는다.
반찬을 먹어야 하는데 오른손 젓가락질이 될 리가 없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찔러 먹으니
할아버지의 언성이 또 높아진다.
"애미가 뭐했어! 애 젓가락질도 안 가르치고!"
아이들 입맛 밥맛 다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른손을 못쓰는 사촌이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오른손을 쓰는 내가 다행스러웠다.
외할아버지는 장손인 사촌 교육에 무척 엄격하셨다.
공부는 둘째고
연필을 왼손으로 잡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필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시니
어린 사촌은 죽을 맛이었을 거다.
어느덧 고학년이 되며
사촌은 젓가락질이나 필기를 오른손잡이처럼 하게 됐다.
욕을 먹으니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로 고쳐진다.
왼손잡이가 그렇게 나쁜 건가?
필기할 때를 보면 좀 희한해 보이고 불편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건 그들이 헤쳐 나가야 할 일이잖아?
스포츠 선수를 보면 나름 유리한 것도 많다.
내 아이가 펜싱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왼손 칼잡이라는 이유가 컸다.
오른손잡이들은 소속된 팀에 왼손잡이가 없으면 같이 연습할 기회조차 없다.
대회에 나가 왼손잡이를 만나면 생소한 방향에서 칼이 들어오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숟가락을 집어 주었을 때,
아이가 왼손으로 받고 왼손을 이용하는 걸 알게 됐다.
이걸 고쳐 주어야 하나?
아주 옛날 밥상머리에서 혼나던 사촌이 생각났다.
결론은 고쳐주지 않았다.
사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아내가 왼손잡이다.
인구 대비 대략 10% 정도라는 왼손잡이가
우리 집 세 식구 중 2명이 왼손잡이다.
수저나 젓가락은 왼쪽에 놓일 때가 많고
식당에서는 서로 팔이 안 부딪치도록 자리 배치를 한다.
비좁은 테이블에 앉으면 젓가락에 눈이 찔릴 수도 있다.
옷장의 옷들도 나와는 반대로 걸린다.
화장실의 세면도구들도 주로 왼쪽에 위치해 있다.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옮겨 놓은 물품들은 곧 왼쪽으로 원위치한다.
인구의 90%, 오른손잡이인 내가
집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내가 비정상이다.
엄격히 따지면 내 아내와 아이는 양손잡이 같다.
아이는 젓가락질, 필기 등은 왼손으로 하는데
던지기는 오른손으로 한다.
발도 양쪽을 쓰는지,
볼을 찰 때는 오른발인데
스노보드 같은 걸 탈 때는 오른발이 앞에
놓이는 왼발잡이가 된다.
(미국에서는 Goofy Foot이라 불린다. 괴짜, 멍청이 정도의 뜻)
디즈니 만화의 어리바리한 구피를 생각하면 된다.
집사람도 아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필기와 젓가락질은 왼손으로
가위질은 오른손으로 한다.
아이러니라면 호통치시던 외할아버지도 왼손 잡이셨다는 거다.
어른들 앞에서는 오른손잡이가 되셨고
평소에는 왼손을 쓰셨단다.
그러다가 양손잡이가 되셨고
왼손과 오른손의 필기체가 똑같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완전히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인데
양손으로 글을 쓴다고.. 뭐 특별히 쓸만한 재주 같지는 않다.
혹시 할아버지께서는 장손을 양손잡이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 있으셨던 건가?
양손잡이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미국은 지난 12명의 대통령 중 6명이 왼손잡이였다.
왼손잡이 인구는 10%밖에 안되는데 희한한 일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건
가위질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다가 였다.
고등학생인 아이가 가위질을 유치원생 수준으로 하는 거였다.
삐뚤삐뚤.. 이게 뭐야?!
동그라미 하나를 제대로 못 오린다.
아무리 요새 가위질할 일이 없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위가 문제였다.
'아니 왼손잡이용 가위가 따로 있다고?
내가 평생 써 온 가위는 오른손잡이용이었다고!'
왼손으로 가위질을 해봤다.
잘라야 할 곳과 칼날이 시야에 가려 가위질이 쉽지 않았다.
잘라보니 딱 유치원생 수준이다.
오늘도 아들 앞에서의 창피함은 내 몫이 됐다.
올해 아들의 생일선물은 왼손잡이용 가위를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