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보우하사
뉴욕 시립대에서 영화 공부를 할 때였다.
전공은 당연히 영화 연출 하지만
부전공을 이수해야 졸업이 된단다.
유학생에게 만만한 수업은 없다.
때 아닌 부전공 선택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룸메이트였던 홍콩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부전공을 중국어로 선택했다.
광둥어를 쓰는 홍콩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다.
본토 말만 부전공에 포함되어 있었다.
광둥어 클래스도 있었지만 단지 교양과목의 일부였다.
중국어 101 기초 수업부터 시작이었다.
20여 명의 학생 중 열 명만 중국인이 아니었다.
백인들, 스패니쉬 둘에 일본인 5명 그리고 나 한국인 정도였다.
첫 수업을 듣고 보니 중국어가 만만해 보였다.
접해보지 못한 간자체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사실 한자를 접하며 패닉에 빠지는 백인이나 스패니쉬를 보며 드는 안도감이었다.
한자의 구조를 상상조차 못 하는 학생들이었다.
패닉 상태의 서구권 학생들. 그들을 바라보는 교수의 얼굴도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었던 내 얼굴
한 학기가 끝나고 중국어 102가 시작되니
백인, 스패니쉬는 모두 사라지고 중국인이 아닌 학생은
일본인 두 명과 나만 남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견딜만했다.
중급 이상인 Intermediate course가 시작됐다.
중국인이 아닌 학생은 일본인 쇼타와 나만 남게 되었다.
미국계 중국인마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중국계는 모두 중국 유학생들이었다.
첫 수업을 마친 쇼타가 나에게 미안하다며
도저히 안 되겠다며 클래스를 포기했다.
쇼타는 교양과목으로 듣고 있었으니 다른 클래스로 옮겨가도
상관없지만 부전공으로 중국어를 선택한,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 온 시기였다.
이제 와서 부전공을 바꾸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시간도 돈도 없는 상태에서는 전진밖에 없다.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중국인들을 위한
중국인에 대한 클래스
클래스가 끝나면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였다.
영화가 전공인 다른 친구들이 작품 구상을 할 때,
나는 도서관 구석에 앉아 한자를 외워야 했다.
간자체는 공포 그 자체였다.
능률이 오를리가 없다.
홍콩 배우 오맹달을 닮은 교수를 찾아갔다.
해도 안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저 졸업해야 한다고요.."
하는데 까지 해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듣고
축 처진 어깨로 교수실을 나섰다.
중국어 숙제, 퀴즈, 시험은 공포스럽기만 했다.
그때 나를 돕는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숙제를 도와주고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는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
교수님은 내가 틀린 한 획 정도는 눈 감아 주셨다.
한자의 특성상 획이 틀리면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가 되는데
대충 넘어가 주셨다. 감사합니다!
마치 교실의 모든 이가 하나 남은 한국인을 보호해 주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어에 관심 갖는 외국인이 흔하지 않았다.
중국계 2세 조차도 중국어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일 때다.
어쨌든 바라는 것 없이 도와준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맙게만 느껴진다.
요즘 뉴욕에서 아시안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가 늘고 있다.
주로 한국인, 중국인이 범죄 대상이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 중, 사망자까지 생겼다.
얼마 전, 양국의 정치인이 범죄 예방에 나서며 연합 전선을 피기 시작했다.
한국인, 중국인이 아닌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계 올림픽의 편파 판정 이후, 반중 감정이 커지고 있다는데
뉴욕에서는 공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뭉치고 있는 실정이다.
뉴욕에서는 국적을 따져가며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중국 사람이 싫다는 한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 싫다는 중국 사람은
외국 친구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람이 문제지, 국적이 문제는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좋기만 한 사람들
나라끼리도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