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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y 07. 2022

펜싱팀의 불화

코치가 팀을 망친다.

뉴욕시 공립학교의 여자부 펜싱 리그가 시작됐다.

펜싱팀이 있는 공립학교는 모두 출전 기회가 있다. 사립학교만 출전 제한이 있다. 

어차피 공립학교, 사립학교 노는 물이 다르다.


공립학교 선수들의 수준을 보자면 천차만별이다.

전국 대회 입상을 목표로 클럽에서 개인 트레이닝까지 하는 선수가 학교팀 소속으로 출전할 수 있다. 

전국 대회 입상이 목표라면 세계 선수권이나 올림픽 출전 수준이다.

이런 선수가, 취미로 칼을 잡은 학생과 경쟁을 한다. 학교의 명예를 걸고 출전했으니 어쩌랴.. 찌르고 본다.



취미 수준을 넘은 선수들은 아메리칸 펜싱 리그에 소속돼, 그들의 리그에 참여한다.  

전국을 돌며 경기에 출전하고 종종 국제 대회 참여도 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대회 투어를 하려면 부모의 재력이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개인 클럽의 교습(Private Lesson) 비는 20분에 60불이 시작이다.

이름난 코치에게 배운다면 가격은 수직 상승된다.


전국 대회 개인전의 상위권 선수들이 미국팀에 선발돼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에 나가게 된다.

선수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아이비리그 대학에 갈 확률도 높아진다. 한때 학부모들 사이에서 펜싱이  

인기 운동으로 떠오른 이유다. 자식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데 못 할 일 없다. 

칼잡이 자식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나중 문제였다. 대개 아이의 긴 고생 끝에 깨닫는다.



굳이 공립학교 선수와 펜싱 리그 선수를 비교하자면 동네 축구 선수와 프로팀 선수 정도의 기량 차이가 있다.

실제로 전국대회 상위권의 선수가 학교 대표로 나와 단체전에 출전을 했는데,

그 선수가 상대팀 선수들을 45번 찌르는 동안 상대팀 선수 중 단 한 명이 한 번을 찔렀다.

그것마저도 더블 터치(Double Touch) 양 선수 모두에게 점수가 주어졌다.

참고로 그 특출 난 선수는 한국계이다. 자랑스럽다. 갑자기?


뉴욕시 공립학교의 펜싱 리그는 여자 경기가 봄에, 남자 경기는 가을에 열린다.

경기가 없는 아들이 여자팀을 돕고 있다. 기술 훈련을 시키며 상대 선수(펀칭 백) 역할을 해준다.

잘 찔리는 것도 기술이니 아들이 배우는 것도 많다.



아들 학교의 여자 펜싱팀 승률? 시즌 초반이지만 전패를 기록 중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칼을 처음 잡아보는 선수가 시합을 뛴다.

상대팀 선수가 의아해할 정도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찔러도 되나?라는 표정


선수들 사이에서 불평이 시작됐다.

"우리 팀의 문제는 코치다!" "코치가 팀을 망치고 있다!"

나이 많은 헤드 코치가 건강 문제로 자리를 비운 사이, 새로 온 코치가 팀을 운영하고 있다.


새 코치의 펜싱 철학은 "모든 선수에게 출전 기회를 준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새 코치가 이해는 간다.

나도 아들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는 아들을 앉혀 놓은 코치가 원망스러웠다.



지기만 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긴장이 고조되더니 사고가 터졌다.

지난주 시합 바로 전, 선수 한 명이 코치에게 불만을 표출했단다.


"왜 못하는 선수를 출전시켜 팀을 패하게 만들어요!"


코치는 선수가 반항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서 화를 냈다고 한다.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야! 펜싱팀은 내가 이끌어!"


경기를 코 앞에 두고 아주 잘하는 짓이었다.

경기 결과? 당연히 전패

시합이 일찍 끝나 아들은 집에 빨리 올 수 있었다. 유일한 희소식이었다.


문제는 선수들 중, 경기에 출전하고 싶지 않은 선수가 있다는 거다.

코치는 모든 선수에게 출전 기회를 주겠다는데 선수 자신이 출전을 원치 않는단다.

본인도 실력차를 알고 있고 패하기만 하는데 좋을 리가 없다. 싫건 좋건 학교 대표다 보니

패배 후에는 당연히 눈치까지 보게 된다. 졌는데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심정.. 겪어 본 사람만 안다.

그런 심정을 코치는 아는지? 모르는지? 선수 선발은 코치의 고유 권한이라며 직진하고 있다.


코치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경기도 결과는 뻔하다.

아마도 전패로 이번 시즌을 마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코치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코치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펜싱 선수가 주인공인 한국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라네요.

요즘 한국 드라마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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