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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y 04. 2022

아들의 경쟁자들

공정하다는 착각

학생이 공부만 잘하면 될 때가 있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시험만 잘 보면 됐다.

그런데 더 이상 아니란다. 시험 점수가 필요 없단다. 

학교 입장에서는 우수한 학생 뽑는 게 목적일 텐데 그럼 선발 기준은?

시험 점수는 필요 없으니 다른 걸 보여 달랍니다.


미국의 학업능력 평가 시험인 SAT/ACT 제출 의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험 점수를 안 보겠다고 하니 경쟁률이 올랐다.

체육 특기생, 특별활동, 인턴, 해외봉사 등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아이비 대학으로 몰렸다.

일부 학생은 봉사활동도 사교육처럼 돈을 내고 한답니다.

지난해, 아이비리그 대학의 합격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대학의 입학 사정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온갖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경쟁률은 높아졌다. 

시험 점수를 안 본다니, 그럼 혹시 내 자식도 가능?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쩌랴....


아이의 봄방학(미 동부는 보통 4월 말)을 맞아 학교 설명회를 다녀왔다. 예상대로 열혈 학생보다는 

열혈 부모가 많았다.

질문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얌전히 있거나, 질문하는 부모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모들?.. 마치 자기가 다닐 학교를 고르듯 하며 질문이 많다. 질문을 위한 질문들..

어떤 아빠는 이미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내용을 질문한다. 답변자의 인내심이 놀랍다.


봄방학 기간 중 설명회에 참석한 학교는 3개교. 지난해 가을에 둘러본 2개교 포함, 

지금까지 총 5개 학교의 입학 설명회에 참석했다. 아내에 의하면 앞으로 4-5개 더 남았단다.

학교 이름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이비 대학, 일반 사립대, 공립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설명회 참석을 하며 느낀 걸, 한 줄 요약하자면 

'우리는 능력자 위주로 뽑겠습니다. 물론 시험 점수 좋은 건 기본이고요..!'


이른 새벽에 일어 나, 5시간을 운전해 겨우 설명회 시간에 맞췄는데,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를 대절해 학교를 탐방하는 사람들이 무리 져 있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미 동부의 학교를 둘러본단다.

편하게 이동하며 정해진 스케줄에만 따르면 되는 학교 탐방 투어였다. 

우리 세 식구 소풍 가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으니 부러울 건 없지만.. 

그 마저도 못하는 가정이 신경 쓰였다. 처음부터 공정한 시합이 아니다.


미국은 분명 능력 우선주의 사회로 향하고 있다. 아니 이미 능력주의 사회다. 

문제는 능력 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평등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켜져야 할 인간 존엄성은 안중에도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펼쳐 놓고는 성공 요인을 오직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고 믿어 버린다. 

저 학력자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라는 편견마저 갖게 된다. 모순점은 저학력자도 저학력자를 비하하는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 논쟁의 결말은 서로의 지능과 학벌을 비난하며 끝나게 된다.

돈 있는 부모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식이다.


상위 1%의 부유한 가정 출신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하위 20%의 가정 출신보다

77배가량 크다.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위 상승을 찬양하는 만큼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게으르다며 혹독한 판결을 내린다.


당신이 성공 못 한 이유는, 당신이 나보다 노력을 덜했기 때문이야!


특권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사돈의 팔촌 찬스까지..

노동자나 빈민층 자녀가 아이비 대학에 갈 가능성은 지난 60여 년 전에 비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 졸업자와 비 대학 졸업자의 격차는 커져만 간다. 그들 사이의 격차는 수입, 가정의 안전성, 지역 사회에서의 위치 등에서도 나타난다. 능력주의 사회의 오만은 학력 우선주의라는 폐해로 이어졌다.

좋은 대학 졸업자는 재능과 노력의 상징이 돼 버렸다. 왠지 올바른 사람 같다. 공부만 했는데도 말이다.

세상이 반드시 각자의 노력에 맞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인생 살며 겪을 희극과 비극 앞에 겸손해야 할 자세가 없어졌다. 공부만 잘하면 장땡인 줄 안다.



아들을 따라 경쟁 선상에 서 있다. 이러다가 뱁새 다리 찢어질까 봐 겁도 난다.

솔직해 보겠다. 우리 부부의 맞벌이 덕분에 아들은 예전의 아내나 나보다 좋은 조건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들이 공부를 곧잘 하니 부모로서 욕심도 생긴다. 엄마나 아빠가 모르는 그들의 리그에서 아들이 놀아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리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해줬으면 한다. 

어설프게 들은 이야기들이 진짜인지? 아들의 입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빠가 궁금한 게 아직도 많다. 


지금 당장은 경쟁을 통해 배울 것을 찾아보겠다.

경쟁도 안 해보고 쫄 필요는 없다. 사실 아들보다 아빠가 쫄았다.

경쟁자들이 너무 쎄 보인다.

능력 우선주의 사회.. 너무 불평등한 거 아닌가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 참조

다른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됐다.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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