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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Oct 05. 2022

생애 최고의 아르바이트

움직이는 자유이용권

복학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8월에 군대를 제대했고 복학은 그다음  봄으로 

예정돼 있었다.

비슷비슷한 술자리로 지쳐 갈 줄은 몇 주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군대 밖으로만 나가면 내 세상이 될 거라는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하루하루였다.


여자 친구? 복학을 기다리는 백수에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냉정하다.


군대에 있었으면  시간에 이러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을 ,

그러니까 군대를 추억할 줄은 꿈에도 모를 때였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  

유일하게 강남에 살던 친구였다.


"롯데월드 아르바이트 광고를 봤는데 같이 해볼래?"


"아 쉬.. 집하고 너무 멀잖아.." 강북의 나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 여자 많을 거야! 그리고 대규모로 사람을 

구하고 있어 떨어질 걱정도 없을걸."



모든 걸 직접 발로 뛰거나 손으로 적어야 할 때였다.

친구가 가져온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와중에 친구가 하나 늘어 셋이서

합격 여부를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고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아르바이트 지원 불패의 시대였다. 셋 다 합격!


오라는 날에 가보니 고만고만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다.

일할 부서가 정해지고 유니폼을 받고 락커로 

안내받은 기억은 흐릿하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다는 기억은 생생하다.

멋모르는  얼간이가 허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 둘은 회전목마와 공연부에 배정을 받았고 

나는 지하탐험 보트 소속이 되었다.

무슨 근거로 일할 장소를 정했는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회전목마에 배정되지 않은 건 행운이었다.

지루한 건 둘째 치더라도 어린아이들의 필수 탈 것인 관계로 어린 손님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눈꼴사납게 구는 커플들까지..

손 안 잡아도 됩니다. 낙마 안 합니다!

공연부에 배정된 친구는 공연에 필요한 짐을 옮기는 그냥 짐꾼이었다.


그에 비해 내가 속한 부서는 노란색 두건을 목에 건 멋진 유니폼에 가장 비싼 탈 것이었다.

그때는 입장료 지불 후,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티켓을 사거나 일종의 콤보 티켓

그리고 맘껏 지칠 때까지   있는 자유이용권 

티켓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종이 표를 받거나, 줄 안내를 하거나

원판 위를 걸으며 승차와 하차를 도우면 됐다.

교대 시간도 사오 십분 마다 가질  있어 

휴식 시간은 충분했다. 얼마 전까지 연병장을 뛰고 있었으니 뭘 바라겠나!

점심은 무료로 직원 식당을 이용할  있었고 

음식은 맛있기만 했다.

숙취를 깨어주던 북엇국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롯데월드에서의 기억이 최고의 아르바이트

이유는?

사랑이 꽃 피는 직장이었다는 거다.


어떻게?

삐삐도 드물었고 핸드폰 같은  있을  없는 

시절이었다.

젊은 남녀가 모여있으니 썸씽이 생겨야 하는데 

돌파구가 없었다.

수많은 눈이 있어 대놓고 이성에게 대시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유니폼이 한대 어울리는 식당에서의 

곁눈질 정도

같은 유니폼의 사람들끼리 식사를 끝마치고 

퇴근 후에는 비슷한 얼간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는 게 일과였다.

여자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지만 여자의 실체가 

없었던 시간이었다.


종료 시간을 1시간 정도 남기고 티켓 부스 앞에 

 있었다.

이 시간이 되면,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들이 오늘 저녁은 어디서 보낼지를 

고민한다.

매번 고민은 똑같고

결론은 석촌호수가의 포장마차로 몸과 영혼은 

흘러간다.

멍하니 서 있는데 티켓 부스 옆의 인터폰이 울렸다.

보통 보트 조작실에 앉아있는 정직원이

지시사항을 전달하거나

바깥 상황이 어떤지 염탐이나 하라는 용도의 

인터폰이었다.


인터폰을 받았다.


"네 지하탐험 보트입니다."


"여기는 게임부인데요." 웬 여자 목소리다.


", 게임 부요?" 게임부가 무슨 용건이지?

이유는 묻지 못하고 

상대방의 다음 말을 기다렸던 잠깐의 침묵.


"오늘 퇴근 후에 뭐하세요? 3:3 미팅 어떠세요?"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미팅이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3명의 멤버를 모았다. 들뜬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며

신천역의 어느 맥주집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미팅이라고는 했지만 그냥 또래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시간을 갖었다.

파트너를 정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즐거웠던 건 가?

했던   하고  하는 녀석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중에 듣자니 인터폰을 이용해 남녀 미팅을 갖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롯데월드 초짜였던 나에게  세상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출근이 기다려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삶이 풍족해졌다.

이제는 망설임 없이 내가 인터폰을 건다.


"퇴근 후 번개팅 관심 있으세요?"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매의 눈으로 식권 검사를 하던 알바가 

식권 보자는 소리를  했다.

티켓 없이 어디든 입장 가능한, 움직이는 

자유이용권이라 렸던

슬기로운 알바생(?)

 

수많은 술자리와 대화가 이어지던 나날이었다.

오직 사람에게만 집중하던 시간들

젊음의 특권을 모르던 우매함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 아픈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아팠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다.

찬바람이 부니 그 시절의 그리움이 더 하기만 하다.


나의 화양연화가 그때가 아니었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지하탐험보트의 이름이 정글탐험으로 바뀌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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