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Hong Dec 09. 2022

아내와의 연례행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어김없이 12월이 됐고 아내와의 연례행사를

치르게 됐다.

1년에 한 번, 있는 척해보기!

올해는 센트럴 파크 남단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로 장소를 정했다.

물론 장소 선택은 아내의 몫.

나는 따라가서 계속 미소를 짓고 있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역할.

가격표를 보면 자연스럽게 인상을 쓰게 된다.

10여 년을 해온 아내와의 연말 행사지만

익숙해질 리가 없다.

그래도 이제는 쓸데없는 허영심이라고 토는 안단다.

아내와 행사를 치르고 나면 연초에 잔소리가 준다는 걸 체험으로 습득했다.

비싼 돈 주고 마신 칵테일이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배웠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사람들로 붐비는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 호텔로 들어섰다.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는 35층에 있었다.

센트럴 파크의 남쪽이 훤히 보이고 발 밑으로

콜럼버스 서클이 내려다 보였다.



도어 호스트(Door Host)에게,

예약 없이 왔다고 하니 잠시 기다려 달란다.

벌써 미소 짓기가 힘들어진다.

아니 빈자리가 저렇게 많은데?

호텔 손님 아니라고 무시하는 거야!

모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말들이었다.

10분 정도를 라운지에서 기다리니 창가의 자리로

안내해 줬다.

전망 좋은 자리였다.

갑자기 호스트가 고마워진다.

이 정도 전망이라면 10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내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돈 쓸 생각에 긴장했는지 조울증 증세가 나타났다.


술은 늘 마시던 보드카 더티 마티니

아내는 레몬 마티니 그리고 샤퀴테리(Charcuterie) 한 접시

칵테일은 한 잔에 26불

아내가 재빨리 메뉴판을 치우는 바람에

안주 가격은 못 봤다.

나랑 살더니 눈치만 빨라진 아내.

아내의 급한 행동에 웃음이 났다.

솔직히 나는 Charcuterie

안주 발음하기도 힘들구먼..


안주 접시에는 절인 고기와 빵

거위 간, 피클 종류가 놓여 있었다.

하나 같이 짭짤한 맛이 술맛을 돋았다.

딱 한 잔 더!



술이 들어가며 꽃꽃 했던 허리가 늘어지고

아내와 편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대화의 주된 내용은 내년이면,

집 떠날 아이 이야기였다.

어느새 시간이 이리 흘러 아이가 대학 갈 나이가

되었는지..

그러고 보니 올 해는 우리의 결혼 20주년.

결혼은 2002년 6월 18일이었고.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이태리를 이긴 날이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

오전에 대! 한! 민! 국! 을 외치다가 오후에 법원으로 달려 가,

성혼 선서를 하며 눈물을 흘린 날이다.

결혼식도 없었고 신혼집은 나의 자취방에서

시작됐다.

신혼여행은 아내의 친구가 보내 준

뉴포트(뉴욕 근방)

숙박권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대낮에 칵테일 바에 앉아있다.

갑작스러운 호사에 몸이 놀란다.

보는 이 없지만 익숙한 척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35층 정도만 올라와도 내 세상 같지 않은 인간 세상

저 밑의 사람들이 우스워 보였다.

함부로 너무 높이 오르면 안 될 거 같다.

주제를 알아야겠다. 갑자기?



우리의 결혼식은 2005년,

아이가 태어나고도 6개월이 지나 서울에서 치렀다.

결혼식은 우리 부부를 위한 결혼인지

부모님을 위한 결혼인지 모를 행사였다.

주연은 뒷자리고 조연들이 펼치는 오버 액션의 연속

지나고 나니 그 희한함에 웃음이 난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에 등장할 뻔한 아이

아빠가 할머니에게 등짝만 안 맞았어도

평생 자랑거리가 될 사진을 가질 수 있던 아이가,

집 떠날 나이가 됐다.

새삼 뭔가 이룬 기분이 든다.


그런데 말이죠..

아이가 떠나고 집에 둘만 남으면

뭘 해야 되냐고 아내가 묻습니다.

술이 확 깨는 건 기분 탓일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최고의 아르바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