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권유
나이를 먹으며 새삼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감정에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거다.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비한 날은 몸이 피곤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가르치듯 권유하는 인간들이 있다.
매사가 설명조에 뭔가를 자꾸 해보란다.
이런 인간 유형.. 당연히 깊이는 없다.
그들이 하는 설명 중 내가 묻고 싶은 것 궁금한 것?
없다.
싫어서 멀리하고 싶어 진다.
똥도 약에 쓸 일이 있을지 몰라 걸려 오는 전화는
가끔 받아 준다.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람 가려 만나는데
얼마 전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나보다 20살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끔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권위와는 거리가 먼 인생 선배였다. 그날 까지는..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여 근황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쯤,
가을이고 하니 호박 랜턴 쇼
(Pumpkin Lantern Show)에 가보란다.
지난주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단다.
매년 가을 이맘때면 열리는 흔한 행사다.
나는 바로 거절을 했다. 싫은 거 좋은척하며
감정 낭비하기 싫었다.
호박 구경할 만큼 한가롭지도 않고..
관심? 절대 없다.
가보지도 않고 거절하면 안 된다며
또 권유를 해왔다.
부인도 아이도 좋아할 거 란다.
이분은 어떻게 단정 짓는 걸까?
내 가족과 일면식도 없으면서.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마다했다.
거절을 정확히 해야 할 거 같았다.
내 아내도 아이도 호박에 촛불 켜놓은 것에
관심 없다.
그래도 가보란다. 재미있단다.
아니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나요?
나이 오십 넘으면 호박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정도는 아는 거 아닙니까?
싫다는데 왜 이러시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들이다.
공연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또 거절을 했다.
평소에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몰라도 시간 낭비가 아니란다.
이쯤 되면 나의 시간 씀씀이마저 의심하는 건가?
이번에는 헛웃음이 났다.
그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면 될까?
싫다는데 계속 권유를 해온다.
나를 비롯해 나의 가족들도 좋아할 거란다.
할 수 없다. 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혹시 스노 보드 해보셨어요?"
칠십 넘은 이에게 물었다.
놀란 얼굴에 안 해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해봤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올 겨울에 꼭 해보세요!
해 보지도 않고 거절하시면 안 되죠."
'부인도 좋아할 테니 같이 해보세요'라는 말은
꾹 눌러 참았다.
말을 끝내 놓고는 소리 내어 과장되게 웃었다.
알아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판단하라는 내 배려였다.
그분은 좋아하는 걸 나누고 싶은 진정성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거절을 하는데도 직진하는 권유가,
언어폭력이라는 것은, 왜 생각을 못 하실까?
싫다는데 계속되는 권유는 듣는 이에게 강요였고
고문이었다.
그냥 네.. 네.. 하며 넘어갈 걸 그랬나?
절대 아니다. 거절의 의사는 명확히 해야 한다.
권유 또 권유.. 그리고 강요
언어폭력이다.
내 소중한 감정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 절대 없다.
다음에 그분을 만난다면? 그래야 한다면..
스키 점프를 권유하고 싶다.
"저는 못해봤는데요. 해보고 재미있으면
권유해 주세요."
제가 너무 삐딱한 걸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