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출되는 걱정
말수가 줄었다.
말 없다는 잔소리를 아내에게 자주 듣는다.
예전에는 못 듣던 소리다. 예전이라 하면 미국에
오기 전의 일이다.
미국에 와 영어로 의사소통을 배워야 했으니 나도 모르는 새, 과묵한 사람이 됐다.
머릿속 한국말은 번역을 거쳐야 입 밖으로 나온다.
말로 하는 감정표현이 귀찮아졌다.
감정 표현을 몸으로 하자니 단순 무식해진다.
어느 모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건 듣는 사람이 됐다.
말 없다는 소리를 듣는 내가 유독 말이 많아질 때가 있다.
아들과 있을 때가 그렇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허리 펴고 똑바로 앉아라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 말아라
지갑 빠트린다 지퍼있는 츄리닝 입어라
찻길 건널 때는 운전사의 시선을 살펴라
선생님 앞에서는 듣는 척이라도 해라
다리 떨려면 제대로 크게 떨어라 운동되게..
말수 없기로는 나의 아버지도 만만치 않다.
평생 한국말만 쓰신 분이 왜 이러실까?
그런 분이 유독 말씀이 많으실 때는..
나와 동생 앞이다.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다가는 더 큰 잔소리를 듣는다
나와 동생 앞에만 서 시면 웬 걱정이 그리 많으신지
걱정.. 잔소리.. 걱정.. 좀 쉬셨다가 다시 잔소리..
그러다 삐침
아무리 미국에서 온 자식이라지만 중년의 아들이
지갑 잃을까 봐 걱정, 지하철 못 탈까 봐 걱정.
그리고 이어지는 잔소리
지하철을 어떻게 타고 카드는 어디다 긁어야
하는지.. 아주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뉴욕 하고 조금 다르긴 합니다.
한국은 타고 내릴 때 모두 카드를 긁어야 하네요.
뉴욕은 탑승 시에만 한 번 긁으면 됩니다.
숙취 해소제도 직접 사다 주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아버지
성분 설명이 잔소리로는 힘드셨나 봅니다.
비슷비슷한 잔소리 레퍼토리
그걸 듣고 있어야 하는 아들들
잔소리 유전자가 있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의 작은 아버지는 중년의 조카가 길 잃을까..
한참의 잔소리를 하시고는 당신이 직접 조카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고 갈 길을 가셨다.
이쯤 되면 집안 내력이 걱정..
잔소리로 이어지는 무한 반복.
지나친 잔소리는 해가 된다는 거
잔소리하는 사람도 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데 어떡해!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받아 온 작은 가방들
소지품을 넣고 다니라고 하신다.
싫다면서도 받아 온 나
그 가방들을 싫다는 내 아들에게 들려 보낸다.
같은 잔소리 다른 사람들
유튜브에서 스치듯 본 어느 아이의 인터뷰가 있다.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가 뭔가요?
사회자가 물었다.
"잔소리는 기분이 나쁜데요,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정말 기막힌 아이의 답변이었다.
아들에게,
충고는 관두고 잔소리나 해야겠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잔소리 듣는 것에 익숙해지겠지요?
저희 아버지의 잔소리가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