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행사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긴 아들이 선상파티에 참석했다.
저녁 6시 웨스트사이드의 선착장을 떠나 10시까지,
배 위에서 뉴욕의 야경을 즐기는 스케줄이었다.
학업에 지친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자는 학교 행사였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니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들 파티에 테마(Theme)가 있었다.
놀랍게도 주제는 1920년대
1920년대의 패션으로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70년대 혹은 80년대도 아니고 1920년대?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서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였다.
아이와 같이 입고 갈 의상을 고민했다.
1920년대의 의상이라..
그런데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의상보다
먼저 준비할 게 있단다.
뭔데?
파티에 같이 갈 파트너를 정해야 한단다.
그리고 파트너 여자아이와 의상을
비슷하게 맞춰야겠단다.
아빠가 두 번째 놀라는 순간이었다.
파트너가 필요해?
프롬 파티(Prom Party)도 아니잖아?
그냥 뱃놀이 아니었어?
뱃놀이인데 파트너가 필요하단다.
수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프롬 파티(졸업 파티, 무도회) 만을 조심하면 되는지 알았는데 선상 파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참고로 미국의 졸업 파티인 프롬 파티에서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단순한 음주 사고부터 싸움 그리고 마약까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아이들이 수백 명
모여있다면 위험 신호다.
미국을 영화로 배웠던 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프롬 파티가 연상됐다.
어느 영화에서는 파티 중에 살인까지
일어나지 않았던가!
일단은 아들이 파트너 여학생을 구하길 기다렸다.
아들은 제법 계획적(?)이었다.
5번째까지의 순서를 정해놓고 한 아이에게 퇴짜를 맞으면 그다음 순위로 옮겨 가겠단다.
5명 중에 한 명은 얻어걸리겠지 하는 심정.
다행인지 1순위가 파트너로 정해졌다.
앗싸! 우리 아들 파이팅!
다음 순서는 여자 파트너가 무슨 색 옷을 입을지를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과 1920년대 패션을
리서치해 보았다.
의상만 보려 했는데 이게 은근 역사 공부가 됐다.
미국 여성의 선거권이 이 시기에 승인되었습니다.
학교가 노린 게 이런 거였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망의 선상 파티 당일
회색 정장에 어울리는 넥타이와 페도라 모자까지 쓴
아이를 아내와 같이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친구들 눈에 띄면
창피하다는 아들.
격론(?) 끝에 아들을 몰래 데려다 주기로 했다.
선착장까지 데려다주는데 아들과 거리를 두고
데려다줬습니다.
아들 하나 키우며 별짓을 다 합니다.
아들을 데려다주고는 아내와 근처의 웨스트 빌리지를 거닐었다.
얼떨결에 데이트 같은 데이트 아닌..
그럼 뭘까?
거리 구경을 하다가 문 앞으로 줄이 긴
태국 식당을 선택했다.
음식은 특별한 게 없었지만 저녁 해피아워가
8시까지였다.
빌리지의 다른 식당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문 앞의 줄이 긴 이유였다.
간단히 싱하 맥주도 한 잔 곁들였다.
아내와의 대화는 내년이면 집을 떠날 아들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를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하는..
내 판단에 전혀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이 믿지 못할 상황.
배가 돌아오는 10시에 맞춰 선착장으로 갔다.
이번에도 멀찌감치 떨어져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아들의 전화가 왔다.
여자 파트너를 그 아이 아버지에게 데려다주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겠단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긴장했을 여자 아이의 아버지가 떠 올라 웃음이 났다.
그분 눈에는 내 아들이 여드름 투성이의 늑대로
보이지 않았을까?
별일 없을 것 같던 파티에 사건이 있었다.
몇몇 학생이 술을 반입하려다 경비원에게 걸렸단다.
그 후 그 학생들의 부모가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기 전까지, 배는 떠날 수 없었고 거의 1시간이나 기다려서야 배는 선착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튀어 보려고 술을 준비한 학생들은 부모에게 인계되었고 당연히 배에서 쫓겨났다.
다른 친구들에게 큰 민폐를 끼친 아이들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좀 제대로 숨기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만반에 준비를 하고 온 파티에 참석조차 못 한 아이들이 조금은 불쌍했다.
집에 가서는 헐레벌떡 뛰어왔던 부모에게
얼마나 혼이 날까?
아들은 파티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모든 게 즐겁고 경이로운 나이여서 일까?
선착장을 떠나지 못한 배 위에서도 춤과 노래가
있어 흥겨웠단다.
배가 선착장에 묶여 있건 물 위에 떠 있건
행복한 아이들에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노는 것도 배움의 연속인 아이들.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을 매일 경험하는 아이들.
영원이 잊지 못할 추억이 더해졌을 아이들에게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