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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Jun 21. 2023

젓가락 질

꼰대들의 지적질 시작

가끔 보는 지인들과 저녁 자리를 갖었다. 

그중 한 사람은 나에게 선배 뻘이니 60이 가까운 나이다. 이 사람 젓가락질을 못한다.

엄지와 검지만을 이용하는 희한한 젓가락 잡기에,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는 속도는 턱 무렵에서 갑자기 빨라진다.

어릴 적부터 음식을 떨어트릴 까봐 생긴 버릇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이런 젓가락 질로 음식을 잡는 것부터가

미스터리긴 하다. 서커스도 아니고.

어쩌다 만나 식당을 고를 때면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생선류는 상상도 못 하고,

짜장면이나 냉면 같은 국수류를 먹을 때도 스파게티를 먹 듯 둘둘 말아먹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이번 같이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일부러 맞은편 자리를 피한다. 처음 하는 식사 자리도 아닌데.. 매번 불안하고 답답하다.


내가 젓가락 질을 배운 건 다섯 살 무렵이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내 또래의 사촌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젓가락 질이 서투른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숟가락으로 손가락을 때려가며 젓가락 질을 가르치셨다. 맞으면서 배우는 것에 익숙했는지 사촌들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피식 웃는 누나도 있었다. 기껏해야 여덟 살짜리가.. 나는 그날 거의 맨밥을 먹어야 했다. 맞아가며 반찬 하나 올려서는 밥을 몇 스푼이고 떠서 입으로 쑤셔 넣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장기알의 졸들을 모아 놓고 젓가락 연습을 했다.

맨 밥을 먹기 싫었고 맞기는 더 싫었다. 외할아버지와 인연을 끊을 순 없지 않나.

그날 최악의 식사 시간을 갖은 건 그 집 장손이었다. 젓가락 질을 못하는데 왼손잡이였다.

오십이 넘어도 잊어지지 않는 기억이다.



어느덧, 내가 아들에게 젓가락 질을 가르쳐야 될 때였다. 내가 가르쳐 보니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상머리에서 집중해서 지켜봐야 했다. 텔레비전 같은데 한눈팔면 당연히 안되고 아주 큰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가 자기 손가락 조정도 못 하는데 젓가락 이라니!

세상이 바뀌어 젓가락 질 가르치는 젓가락이 나왔지만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무조건 인내심 장착하고 전진 앞으로!

결론은 어릴 적에 젓가락 질을 배우려면 관심 있는 어른이 곁에 있던가 아니면,

어린 나이에 불굴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 는 것.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나이 먹고 고생하면 된다.

가정 교육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된다.

젓가락 질을 가정교육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할 말 없지만..

젓가락 질 말고도 가정 교육 시킬 건 차고 넘치지

않나?


다시 젓가락 질 못하는 선배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문제는 사람 좋기만 한 그 선배가

돈 자랑밖에 할 줄 모르는 장 사장이나 사기 당구를 친다는 박 사장 같은 부류의 인간들에게 조차

무시를 당한다는 거다.

이 것이 젓가락 질을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다.

하찮은 인간들로부터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 무시를 당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젓가락 질이 그 모양이야!”

어릴 적에는 면전에서 무시를 당했고

늙어서는 뒷담화를 당하는 꼴이다.

내가 내 입으로 먹을 걸 가져가는데 어떤 법칙을

따라야 한단다.


사람 좋은 선배가 젓가락 질 못하는 것이 보기 싫고,

하찮은 인간들에게 지적질당하는 것은 더 꼴 보기 싫어..

선배에게 젓가락 질 좀 배워 보라고 잔소리를 했다.

평생 고쳐 보려 했는데도 안 된다는 대답을 한다.

나는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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