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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y 31. 2023

가난한 유학생

먹을 거 아끼지 마!

첫 만남이었다.

선배가 자신의 옛 모습을 상기시키는 젊은이가 있다며 저녁 자리에 데려 온 사람이었다.

하얀 얼굴에 깔끔한 옷차림.

셔츠는 바지 속으로 정리되어 있고, 청바지가 아닌 카키 팬츠를 입고 나온 28살 청년이었다.

몸에 밴 듯한 자연스러운 예의는 애어른 같은 모습.

그 모습을 어른들이 좋아하겠네 라는 꼰대 같은 생각을 갖게 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청년 입에서 한탄이 흘러나왔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단다.

애어른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냥 아이가 됐다.

졸업은 다가오고 직장 구하기는 하늘에서 별따기만큼 힘든 인생. 미국에서 유학생 신분이니 오죽하랴.

공부하러 온 건지? 신분 걱정하러 온 건지?

정체성이 흔들린다.

가까스로 한국의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는데, 그나마도 곧 바닥이 난단다. 요즘은 먹을 걸 아끼느라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단다.


김치 값이 계속 오른다.


나도 선배도 유학생 신분이었던 기억 깨문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버틸 힘이 점점 바닥을 향하던 시기.

이런 유의 한탄을 몇 년 전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하고 있었다.

형보다는 아저씨뻘인 지인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니..

그래도 먹을 건 아끼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을 걸 아끼지 않으면 어디서 아낍니까?'

'차비를 아껴 학교를 가지 말까요?'

'책 값을 아껴 교재를 사지 말까요?'

'옷이나 헤어 스타일 포기한 건 이미 아주 오래전입니다.'

밥 사주는 아저씨에게?..  물론 하지 못한 말이다.

아저씨들에게 얻어먹을 거 얻어먹으며 그들은 세상 물정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마음의 문도 닫았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면 얻어먹을 생각에 또다시

쪼르르 달려 나갔던 시절. 배가 고프니 먹고 싶은 게 더 많았던 아이러니의 시절.

유학생을 만나면 생각나는 내 과거다.

흑역사? 확실한 건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유학생 앞에서는 좀 더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쉽게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입장..

면역력이라고는 1도 없는 젊음.


먹을 건 아끼지 말라니요!!

진정한 공감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던데,

공감이 부족한 건지? 디테일이 부족한 건지?

남에게 함부로 먹을거리를 이야기하면 안 될 일이다.

미세한 자극이 잦아지면 상처로 남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유 있는 유학생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미국에 오면 타고 다닐 차부터

고른다는 이야기는 방송에서만 접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계층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다.

그래도 할 말은 있다. 가난한 유학생들.. 공부하러

와서는 일 하느라 바쁜 학생들.

뉴욕에 반지하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학생들.

먹을 거 밖에는 아낄 게 없는 학생들.

제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진심으로 기원한다.

살다 보니 어쩌다 되는 일이 너무 많다.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어느덧 목표지점에

서 있는 경우..

먹을 걸 아껴서라도..

희망의 끈만을 놓지 않는다면..

인생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법이다.


그 청년과는 첫 만남 이후 1년에 두세 번 만나는

사이가 됐다.

28살 청년은 34살 장년이 됐다.

직장을 얻었고 다행히도 먹는 건 아끼지 않아도

되는 눈치다.

왠지 이 사람이 고맙다....


월 세, 미화 1300불의 반 지하방

간단한 조리 시설과 욕실이 딸려있다.

요즘 월세 상승으로 이런 방 구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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