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거짓말쟁이
오랜만에 전화 통화가 성사(?)된 아들 목소리에 힘이 없다.
생소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세상을 얻은 모습이었다.
캠퍼스를 걸을 때면 자연스럽게 가슴이 펴지던 아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행동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모르는 길도 앞장서려 했다..
이제는 내 할 일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선전포고처럼 보였다.
그런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던
아빠.
며칠 만에 들은 아들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걸 본능적으로 느낀 아빠.
무슨 일 있지? 무슨 일이야?
괜찮으니까 말해.
아들이 답답하게 뜸을 들인다.
영상 통화로 바꾸자는 말을 하려는데 전화기 건너편, 목소리가 들린다.
"매 시간 진행되는 퀴즈와 시험들로 힘들어.. 어제도 새벽 3시쯤 잤어.."
이번에는 아빠가 대답에 뜸을 들인다.
신입생 환영회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아이들을 들볶아?
아직 미팅, 소개팅도 못 해봤는데!
주변에서 아이비 대학의 공부가 힘들다고들 했지만,
특목고를 다닌 아들이기에 나름 준비가 돼있다고 생각했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으면 집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알아서 공부하던 아이였다.
체력이라면 아직도 최상으로 올라가는 단계.
어제보다 오늘의 체력이 좋은 상황이다.
이런 아이가 공부가 힘들단다.
본인이 영재도 천재도 아나라는 걸 아는 아들.
영재, 천재를 만나보니 자괴감도 느끼는 거 같았다.
한 번 쓰윽 훑어봤는데 내용 파악을 정확히 하는 아이가 실제로 있단다.
아빠는 아직까지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실제로 본 건 영재, 천재인 척하는 가짜들뿐이니
아들의 묘사가 놀랍기만 하다.
이번 엔 아빠가 자괴감이 든다.
입학하자마자 졸업 걱정. 우리 DNA 탓은 하지 말자!
갖은 건 노력 밖에 없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아이비 도대체 넌 뭐냐?
그럼 아이비가 우습냐!라는 대답이 환청으로
들린다.
아빠가 거짓말을 했단다.
대학 들어가면 공부하는 거 쉽다고 하지 않았냐고.
미안하다 아들, 아빠는 아이비 대학을 모른단다.
아빠는 이번에도 "아들 화이팅!" 말고는
해 줄 말이 없다.
진부한데 책임감 마저 없어 보인다.
공허하게 "아들 사랑해!"를 덧붙여 본다.
전화 끊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