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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r 26. 2024

부유하는 상처 1

그녀였다.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았다. 이른 아침의 운전이 부담스럽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해 때문인지 거리는 어둡기만 하다.

마주 오는 차의 커다란 불 빛이 시야를 흐트러트리고 집중을 방해했다. 차의 속도를 더 줄이고 손과 가슴을 더욱 운전대에 가까이한다. 큰 딸아이 부부가 손자를 맡겨 놓고 여행을 갔다.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한국일주 여행을 하고 온단다. 손자를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줘야 했다. 맏딸 역할 톡톡히 한 큰딸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은 내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혼자 살며 거르던, 아침 걱정을 한다. 빵을 준비하면 될 일이지만 손자의 눈치를 살폈다. 사춘기인지 잔뜩 예민해진 게 제 어미를 빼다 박은 사내놈이다. 손자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슨 공사 인지도 모를 공사로 며칠 전부터 중장비들이 길을 메우고 있다. 포클레인, 트럭, 불도우저.. 그리고 이름 모를 중장비들 2차선 도로가 더욱 좁아졌다. 맞은편 차를 지나칠 때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중앙선을 넘을 듯 아슬아슬 다가오는 차들. 하지 않아도 될 운전에 딸부부가 원망스러웠다.

겨울 끝무렵의 아침은 어둠을 미처 거두지 못하고 나는 예전 같지 않은 육신 탓을 한다. 공사구간이 거의 끝나고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뿌염한 전방이 답답해 신경질을 담아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마른세수를 하듯 창 닦이는 별 효과가 없었다. 차창이 문제가 아니고 쓰고 있던 안경이 문제였다. 혼자 무안해하며 고개 돌려 버스 정류장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줄 서있는 사람들의 옷 두께는  제각각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이다 보니 마음의 온도도 제각각이었다. 두툼한 파카를 입은 사람 옆에 얇은 스웨터 차림인 사람이 서 있다. 그 모습이 우스워 보여 조절 안 되는 미소로 사람들을 살피다가 청자켓에 검은색 면바지를 입은 여자에 시선이 멎었다. 다리 선에 맞춰 바지를 꿰맨 것처럼 다리 윤곽이 훤히 보였다. 곡선 큰 웨이브 머리에 얼굴은 가렸고 다리만이 꼿꼿한 모습. 그녀가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그렇게 잊으려고 했던 그녀였다.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허둥거리는 손으로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신호가 바뀌었는지 뒷 차가 크게 경적을 올렸다. 경적 소리에 그녀가 내 쪽을 쳐다봤다. 순간 눈이 마주치고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일 리 없지만 그녀와 너무 닮은 여자였다. 부유하던 그녀의 조각이 내려앉았다. 하나하나의 조각은 선명하기만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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