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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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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7. 2024

지난밤 7화

감사합니다.

맑은 밤이다. 밤안개가 깔려있던 어젯밤이 헛것처럼 느껴졌다. 길 가장자리로 차를 세웠다.

길을 건넌 너구리가 있던 자리쯤이었다. 멀찌감치 주유소의 불빛이 보인다.

띄엄띄엄 규칙적으로 서 있는 가로등은 밝지 않다. 고개를 너무 높이 쳐든 듯 보인다. 긴장

탓인지 귓가가 간지러웠다. 긴 숨을 한 번 내쉬고 차에서 내렸다. 풀냄새가 난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끄니 바깥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전화의 라이트 기능을 보려고 다시 차에 오른다.

전화기에서 빛이 나온다. 차에서 내린다. 전화기 라잇은 생각보다 밝았다. 차를 등 뒤로하고 동쪽을

보고, 서쪽을 봤다. 지나다니는 차는 없다. 트렁크를 열고 목장갑을 찾아 낀다. 신문뭉치를 꺼내고

비닐봉지도 챙긴다. 그때서야 부삽이라도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을 한다. 종일 외면했던 오른쪽

뒷바퀴로 간다. 바퀴는 깨끗했다.

전화 라이트를 가까이하며 타이어의 홈까지 살핀다. 핏자국이 없다. 오른쪽 바퀴가 아니었나?

왼쪽 바퀴로 가서 빛을 들이댄다. 마침 빠르게 스쳐가는 차가 위협적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고 귀를 꼬집는다.

어떤 이물질도 눈에 띄지 않았다. 타이어 바꿀 때가 됐네!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타이어의 온기가 코로 전해진다. 알지도 못하는 너구리의 체취는 없다.

천천히 일어선다. 다시 한번 동쪽을 보고 서쪽을 본다. 중앙선까지 냅다 뛴다.

한정된 시야를 전화기 빛으로 넓혀 보려 한다. 너구리 사체를 찾는다. 사체의 조각이라도 찾아보려 한다.

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차 세워진 곳으로 후딱 뛰어온다. 여기가 아니었나? 차에 올라 기억을 되새긴다. 그러니까 학교를

지나치고 고개를 넘어서 막 내리막길로 내디딜 때였는데…, 차에서 내려 고개 숙여 길을 살피며

내리막길을 걷는다. 사체 아니 사체 조각이라도 찾아서 곱게 묻어줘야겠다는 계획이 쉽지 않음을

알았다. 오늘 몇 번이나 결심했는데…,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세운 거사였는데 오밤중에

헛짓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핏자국이라도 찾으면 그 자리에서 기도나 해야겠다는

것으로 마음 정리를 했다. 이 근처가 틀림없는데 왜 안 보일까? 익숙해진 전화기 빛으로 차가운

아스팔트를 비춘다. 낮에 왔어야 하는 건데 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길 건너편을 한 번만 더 보고

돌아가야겠다. 길 건너로 후딱 내딛듯이 뛰었다. 그때 눈앞이 확 밝아진다. 거대한 불빛에 몸은

얼어붙었다. 동공이 빠르게 축소된다. 트럭의 거대한 화통 소리. 굉음. 섬광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어깨가 움츠러든다.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손을 귀로 가져간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 찰나 트럭은

내 옆을 홱 지나친다. 거의 의식을 잃을 뻔했다. 라잇이 켜진 전화기를 주워든다. 전화가 깨졌고 안

깨졌고는 안중에도 없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던 다리를 질질 끌며

길가로 되돌아온다. 길 가장자리에 다다라서야 털썩 주저앉는다. 물이 고여 있었는지 엉덩이에

냉기가 전해진다. 다리가 풀려서 일어나질 못한다.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하늘을 쳐다본다.

비죽비죽 별이 보인다. 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한다.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엉거주춤 일어난다. 젖은 바지를 쥐어짜본다. 방금 비명횡사할 뻔한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길 건너에 너구리가 보인다. 눈물에 가려진 시야를 문질러 닦는다. 한 마리, 두 마리, 셋, 넷…, 네

마리다. 눈앞을 닦고 다시 센다. 큰 놈 두 마리, 작은놈 두 마리. 웃음이 났다. 웃음, 눈물…, 콧물이

흘러내린다. 살아있어 고맙다. 너굴아….

몇 시나 됐을까? 전화기를 꺼내 본다. 전화기는 멀쩡했다. 다행이다 싶다. 풀벌레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 같다. 낮에 본 거지 양반에게 인사라도 건네봐야겠다. 진흙이

묻고 질퍽하게 젖어있는 바지를 털어본다. 그나저나 영순에게는 뭐라고 하지?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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