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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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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6. 2024

지난밤 6화

마누라

집으로 돌아가 밥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빵집을 나왔다. 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와 보니 옆의 차가 너무 가까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 문을 가까스로 열고 내 몸을 구겨

넣듯이 해서야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바짝 붙어있던 차 때문에 짜증이 났다. 시동을 거는데 주차

자리를 찾던 차가 코를 들이민다. 가뜩이나 예민한데 도도해 보이는 운전석의 긴 머리가

보인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벤츠의 방향등. 돈 많은 어느 집 마나님인가 보다. 비싼 벤츠 타면

다인가! 기다림의 미덕은 전혀 없는 인간. 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이며 눈이라도 마주치면 빤히

쳐다볼 요량으로 벤츠 운전석을 봤다. 그녀였다. 내가 아는 그녀였다. 한동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녀. 나는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나를 모른다. 아들 녀석을 데리고

YMCA의 수영장을 다닐 때 마주치던 여자. 단발머리 사이로 보이던 하얀 목덜미가 나를 부끄럽게

했던 그녀. 긴 종아리와 허리 곡선에 뒷모습마저 아름답던 그녀였다. 운동신경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그녀 옆의 딸아이. 그녀가 지금은 긴 머리를 하고 있다. 한국 사람일까? 중국 사람일까?

그녀에게 한마디 말도 못 붙여 봤던 나. 가끔 만나 사는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차를 달리며

말 한마디 못 건네 본 나를 한탄한다. 그리고 말을 건네 보았다면 어쩔 건데?라는 푸념을 한다.

그래 어쩔 셈인데? 한동안 나에게 YMCA 가는 기쁨을 주었던 그녀. 말을 못 건네봐 다행이다 싶다.


냉장고에서 콩나물국 냄비를 꺼낸다. 대충 데우고 밥을 말아 넣는다. 국이 있으니 반찬은

김치로 족하다. 그런데 김치가 시었다. 신 김치는 딱 질색인데..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먹는다. 온종일 인내심을 시험하는 하루 아니 인내심을 시험하는 나의 인생. 콩나물과 김치와 밥을

씹으며 결심을 되새긴다.

마누라가 영업 끝낼 시간에 맞춰 가게로 갔다. 뒷바퀴 쪽을 외면하며 차에서 내린다. 도어의 딸랑

소리와 함께 네일 살롱으로 들어섰다. 꼬모 에스따! 이번에도 엘리자베스. 나는 눈인사를 건넨다.

가게에는 손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가야 가게 문을 닫을 수 있다. 오늘 매상이

괜찮았는지 마누라가 방글방글 웃고 있다. 나를 보고 웃는 건 아니다. 마누라에게 가게 문 닫고 잠깐

들를 곳이 있다고 말한다. 밖에서 쓸데없는 짓거리하지 말라는 마누라의 잔소리. 잔소리에 리듬이

있다. 매상이 높은 게 틀림없다. 기다리던 손님이 나가고 대충 뒷마무리를 한다. 마누라와

종업원들이 밖으로 나가고 나는 자물통을 들고 따라나선다. 꼬챙이를 들어 셔터문을 내린다. 내가

문을 잠그고 마누라가 확인을 한다. 곁눈질로 마누라를 봤다. 비닐 벗겨진 낡은 줄의 가방이 마누라 어깨에

걸려있다. 벌어진 마누라의 어깨에 믿음이 간다. 다행이다 싶다. 영순아 사랑해! 한 손들어 손짓하며

돌아섰다. 마누라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돌아볼 용기가 없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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