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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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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6. 2024

지난밤 5화

결심

은행으로 향하던 계획을 미루고 근처 한국 빵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점심시간이 넘은 지금까지 커피 한 잔 못했다. 커피를 떠올리니 커피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한국

빵집, 한국말로 인사하고, 한국말로 주문을 했다. "뜨리 달러 화이브 센츠"여자가 어떤 감정도 없이

 영어로 대답한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 여자에게서 커피를 전달받았다. 

문득 화가 치밀다가 내 자식 교육이나 잘 시키자고 다짐을 해본다. 하늘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커피 한 번 쳐다보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커피 한 번 쳐다보고…, 잔뜩 흐린 하늘이 커피와 닮아 보인다. 흐린 하늘이라 하늘을 볼 수 있다. 평소 같으면 눈이 시려 하늘로 눈길조차 못 주었을 거다. 갑자기 코 끝이 맵다. 콧물이 나오고 눈앞이 먹먹해진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 한다. 남이 볼까…, 냅킨을 코로 가져가는 척하며 눈물을 찍어낸다.


봄날이었다.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습기 없는 공기가 허파까지 닿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이불

말리기 좋은 날. 이불 뭉치에 눈앞이 가려 더듬더듬 현관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유난히 날카롭게

들렸던 거실의 전화벨 소리. 들고 있던 이불 때문에 뒤뚱거리며 전화기로 다가간다. 이미 끊어진 벨

소리. 주머니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휴대폰이 몸 전체를 뒤흔든다. 번호를 보니 한국에서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나쁜 소식임을 알았다. 아버지 방금 돌아가셨어!라는 동생의

건조한 말. 올 것이 온 거 같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없었던 쉰 넘은 장남. 그제야 들고 있던 이불을

소파로 던져 버린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조심히 전화를 끊는다. 소파 밑으로 주저앉아 한숨만 쉬어

됐던 정오 무렵이었다. 아버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혼잣말이었는데도

무척 생소했다. 이럴 때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 거지?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려 했다.

아이였던 내 기억만 떠올랐다. 그 아이가 나였나? 그 아이가 지금 나인가? 부모와 떨어져 지낸

중년의 나는, 아니 그 아이는 남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모든 상황이 내 일 같지 않았다.

한국행 비행기 삯은 얼마일까? 급하게 구매를 하게 되니 할인이 안될 텐데…, 입맛은 없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해라며 냉장고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끼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빵집 창밖은 신호등에 맞춰 규율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눈치를 보듯 서 있는 차들, 바쁜 척 서

있는 사람들, 서성이는 비둘기들. 하늘은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고 있었다. 거뭇한 눈 주위,

유난히 짧은 팔다리 너구리가 연상되다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기억 속 아버지 얼굴은

미국 올 때 헤어졌던 그때 나이에 멈춰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이다. 나는 국민학교

입학 무렵까지 아버지를 아범이라 불렀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아버지와의 첫 만남.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검은 얼굴에 더 검었던 눈 주위를 잊을 수 없다. 그 남자를

가리키며 동현아! 니 아범이다. 하셨던 할머니. 나는 처음 보는 그를 아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월남에 갔던 아버지는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아버지와의 첫 대면을 기억하는 아이가

되었다. 중학교 담임에게 종아리를 맞고 온 날,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던 아버지의 짧은 손가락,

낮술에 취해 들어온 아들에게 박카스를 건 넷 던 아버지. 미국에서 아빠가 되어 돌아온 아들에게

칼국수를 끓여 당신 자식과 그의 자식을 먹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 오늘

보지도 못했던 해가 기울어간다. 배고픔은 안 느껴졌다. 하지만 먹어야 한다. 하늘 한 번 보고, 식은

커피 한 번 보고…, 결심을 해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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