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레드 뉴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Hong Feb 15. 2024

지난밤 4화

겁쟁이

고인 물을 찾던 세차장에서 네일 살롱까지의 거리는 짧게만 느껴졌다. 

네일 살롱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의도적으로 뒷바퀴 쪽을 외면하며 내렸다. 

도어의 딸랑 소리와 함께 네일 살롱으로 들어섰다. 

'꼬모 에스따!" 언제나 제일 먼저 반겨주는 스페니쉬 엘리자베스. 

"꼬모 에스따!" 나도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왼쪽으로 늘어 선 페디큐어 체어와 오른쪽으로 늘어선 네일 테이블을 지나 마누라에게 다가간다.

몇 명의 손님이 페디큐어 체어에 앉아 있었는지, 몇 명의 손님이 네일 서비스를 받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관심을 회피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마누라가 읽고 있던 신문으로 고개를 감춘다. 오늘 아침이 특별한 건 아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연애 때부터 결혼한 지 이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애교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여자. 슬그머니 마누라가 앉아있는 카운터로 가서 캐쉬어의 서랍을 연다. 은행에 입금할

수표를 챙기고 공과금 낼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마누라 눈치를 살피고 다녀올 거라며 가게를

나선다. 처음 네일 살롱을 운영할 때부터 이런 관계는 아니었다. 필요한 물품이나 기술자를 구하는

건 내가 할 일이었고 마누라도 내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네일 살롱 일이라는 게 여자 직원에

여자 손님들, 내가 설 자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좁아져 있었다. 이상한 일은 나에게 셔터문이

점점 무겁게 느껴질수록 마누라의 힘은 점점 세졌다. 청소 일도 눈치 빠른 엘리자베스가 맡게

되니 내가 가게에 붙어 있을 이유는 점점 사라져 갔다. 나의 입지가 작아져도 미련은 없었다. 나

자신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조정 가능한 것이 점차로 소멸되어 갔다. 드라마

보다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 하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미처 털리지 않는 소변 때문에 노란색으로

팬티를 물들인다. 조정됐었고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조정 안 됐다. 마누라 눈치를 볼

즈음, 나의 모든 팬티는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랍에 꽉 차 있는 검정 팬티를 보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쯤 나는 아예 조정할 수 없는 것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정치인 걱정,

연예인 걱정, 지구 온난화나 세계평화 걱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기로 했다.

다행이다 싶다. 지금은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게 문 닫는 일을 하고 있다.


와이퍼를 작동시켜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다. 엷은 비. 괜히

시야에 방해만 된다. 쇼핑몰 코너를 돌아 교차로를 지날 때였다. 신호등 색깔은 노란색. 속력을

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감시 카메라 무서워 운전도 편히 못 한다. 졸보가 되어버린 나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인다. 횡단보도 왼쪽에서 흑인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한쪽 다리를 절며

걸어온다. 발보다 훨씬 커 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다. 구멍 사이로 엄지발가락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회색인 것으로 추측되는 낡은 바지의 한쪽은 무릎에 걸려있고 다른 한쪽은 기장이

길어 땅에 끌린다. 늦여름 날씨 아랑곳하지 않는지 청색의 오리털 조끼를 입었다. 조끼의 생채기로

오리털이 삐죽삐죽 보인다. 내 쪽으로 오는 게 나에게 적선을 원하는 게 틀림없다. 그자의 손은 때

끼가 가득하고 손등은 나무옹이를 닮아있다. 모양새가 잔돈을 건네주고 싶어도 건네주기 힘든

상황이다. 내 손을 잡기라도 하면 어떡해? 나는 시선을 빨간색 신호등에 고정한 채 공기 마실 만큼

열려있던 차창을 슬며시 닫았다. 잠겨있을 도어록 버튼을 확인 차 눌러본다. 버튼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져 놀란다. 이제는 됐어라는 만족감. 신호등을 보다가 계기판으로 시선을 낮추며 그자의

눈치를 살핀다. 그자가 뭐라고 한다. 시선만 돌려 쳐다보니 그 자가 니하오?라고 한다. 그자의

얼굴을 슬쩍 보고 다시 신호등을 쳐다본다. 제기랄 이곳 신호등은 왜 이리 안 바뀌지 하는 원망. 

차 안의 미러로 뒤쪽을 보니 내 뒤로는 차 한 대 없다. 그자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뻑킹 차이니즈라는 고함이 들린다. 가운뎃손가락 마저 들이댄다. 난데없이 욕을 먹었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괜찮아라며 위로를 한다.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갑자기 퉤

소리와 함께 내 창에 무늬를 새긴 그 자의 침 덩어리. 그자는 더는 절룩거리지 않으며 내 오른쪽으로

지나쳐 간다. 그렇지 않아도 뒷바퀴에 끼어있을 너구리가 신경 쓰이는데 옆 창에는 침 뭉치가

새겨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까 창문을 닫기 잘했지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다행이다 싶다. 언제 왔는지, 뒤 차가 경적을 울린다. 나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

창문의 침 덩어리는 바람에 밀리며 나비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변해간다. 안개비에 반사되어

잿빛이었던  침이 무지갯빛으로 보인다. 차를 달리다 보니 나비 무늬는 퍼져가고…, 어이없는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밤 3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