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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5. 2024

지난밤 3화

추적자

앞서가는 사람을 쫓고 있다. 언제부터 이 자를 쫓고 있었을까? 쫓는 자의 숨결을 느낀 듯, 앞선

이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나의 걸음도 빨라진다. 숨이 턱에 차올라 숨을 멈추고 걸음을 빨리한다.

걸음은 달리기가 된다.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거리는 좁혀졌고 그의 뒤통수, 어깨, 등이 선명하게

보인다. 짧은 머리, 갈색의 가죽 재킷.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다.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한다. 걸음의 속도는 쫓기는 이에게 의존한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그를 향해 손을 내

뻗는다. 손이 닿을만할 때 다시 벌어지는 거리. 벌어지는 거리를 좁혀 보려 걸음을 재촉한다.

그자의 걸음도 빨라진다.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이때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앞서 가던 사람이 저만치 가고 있다. 나는 뛰기 시작한다. 뒤에 있던

인기척이 가까워진다. 목덜미에 서늘한 느낌이 전해진다. 돌아볼 용기는 없고 달리기에 속력을

낸다. 쫓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쫓고 있었던가? 쫓기고 있었던가?

내 뒤의 인기척도 더는 없다.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뛰는 가슴이 모든 소리를 집어

삼킨다. 멈춰서 허리 숙여 숨을 몰아쉰다. 

허리를 숙인 채로 뒤를 돌아본다. 순간 노란 불덩이가 내 오른쪽 눈을 퍽하고 때린다. 

너무 강한 충격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것 같다. 고통조차 느끼기 전의 그 찰나. 

피범벅 된 나의 몸을 내려본다. 고통을 눈으로 느낀다. 크게 내지른 비명은 나에게조차 들리지 않는다. 

내내 뒤척이게 만들던 밤이 이렇게 물러났다.


눈을 뜨니 아침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마누라는 당연히 나가고 없다. 나는 대충 세면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아 냉장고 문을 연다. 입맛이 없는데 먹을 것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멍하니 허리 숙여 냉장고 안을 들여 보다가 우유를 집어 들었다. 우유를 잔에

따르고 단숨에 마신다. 너구리 새끼들이 젖은 뗐으려나?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서 있는 차를 보니, 어제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나는 애써 오른쪽 뒷바퀴를

외면한 채 운전석에 올랐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세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너구리 사체가

뒷바퀴에 끼어 있을 것 같아 어깨가 움츠러든다. 혹시 붙어 있을지 모를 사체를 떼어 내려고 차를 과격하게 

몰았다. 과속방지턱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세차장은 멀지 않았다. 웅성거리 듯 나와 있는 직원들이 

보였다. 세차장에 도착했다. 뒷바퀴에 끼어있을 피투성이 너구리 때문에 욕이나 먹지 않을까 

조바심이 생겼다. 눈치를 보며 차에서 내리는데, 조금 전에 있던 직원들이 안 보였다. 

사무실 쪽으로 가 안을 살펴보는데 한 직원이 나오며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본다. 나는 긴말 안 하고 카 와쉬 스페셜이라고 했다. 나를 쳐다보던 직원이 내가 들어온 진입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뭐지? 하며 나는 밖을 쳐다보고 다시 직원을 쳐다본다. 직원이 다시 밖을 가리킨다. 나는 순간 화가 나, 왓! 하며 다시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법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비가 내린 걸까? 나와 마주친 직원의 눈은 무심함에서

비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창피함으로, 내 차는 비로 젖고 있었다. 운전하며 내가 와이퍼를

작동시켰었나? 언제? 갑자기 헛것과 실체가 구분이 안 된다. 나는 상관없으니 세차를 해달라고

말했다. 비웃음에서 모멸감의 눈으로 바뀐 직원은 나 하나 때문에 세차장을 오픈할 수도 없고 다른

직원은 모두 퇴근해서 세차를 할 수 없단다. 비가 그친 후 다시 오란다. 

저절로 숙여진 고개로 차를 돌려 세차장을 빠져나왔다.

조금이라도 물이 고여있는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제발 좀 씻겨 나가라고 입은 중얼거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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