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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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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4. 2024

지난밤 1화

교통사고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습도가 높고 찬 공기 때문인지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밤이다. 

차의 속도를 빠르게, 느리게 반복한다. 평소 낯설지 않은 길이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숲에 가려진 호숫가를 지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무리하게 힘이 간다. 

낮에 있었던 김 사장과의 마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실 그 마찰이라는 것도 어떻게 시작됐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것이었다. 

몇 살은 어린 후배가 말끝마다 내 얘기에 토를 달아 생긴 언쟁이었다. 

나이 먹어가면서 성격도 둥글둥글 해지고 대충 넘어가는 게 좋을 텐데 김 사장은 나이를 먹을수록 할 말

다 하는 모습이 밉상 맞아 보였다. 

내가 해야 했을 말,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의 충돌로 인해 운전에 집중이 안 됐다. 

안개 때문인지 몽환적 느낌마저 드는 밤이다. 빨리 차를 몰고 집으로 가 누울 생각뿐이었다.


롱 아일랜드 대학을 지나 낮은 고개를 오르고 내리막길로 막 접어들 때였다. 

눈앞에 갑자기 너구리 몇 마리가 눈에 띄었다. 

가족인가? 

큰 놈 한 마리에 작은놈 둘. 너무 갑작스러워 생각은 하얗게 사라져 버렸다. 

너구리 가족은 놀랐는지 가던 길을 숫제 멈추어 버렸다. 

그중 큰 녀석은 헤드라이트 뒤의 내 눈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높지 않은 언덕이었는데도 내리막길 탄력을 받았는지 가속이 붙어 있었다. 그 찰나에 너구리들과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중앙선을 넘어 너구리를 피해 볼 양으로 왼쪽으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 눈에 밟힌 건 또 한 마리의 너구리. 

키 작은 가로수 밑에서 나를 보고 있다. 그 야광 같은 눈과 마주친 나의 눈. 

나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너구리를 앞서가려고 가속 페달을 더 깊이 밟았다. 

홱 하고 지나치고 다행히 너구리들을 피했다고 생각될 때, 오른쪽 뒷바퀴에서 덜커덩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밟았구나! 확실한 느낌. 순간 뒷덜미가 목을 옥죄는 듯 느껴졌다. 무서웠다.

덜커덩 소리는 연이어 들렸다. 나는 열려있던 창문을 모두 닫았다. 

좌회전을 하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을 무렵 덜컥하며 소리는 멈췄다. 

혹시 너구리 사체가 뒷바퀴에 낀 것은 아닐까? 

신호등이 좌회전 신호로 바뀌는 동시에 차의 액셀을 굳게 밟았다. 차에 속력을 더했다. 

쫓아오는 너구리를 떼어 내려는 심정이었다. 

공포심은 더욱더 커져 목덜미에 너구리의 입김이 닿는 듯했다. 

그리 멀지 않았던 집에 도착했다. 주차를 시켰지만 바로 차에서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이 먹고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 후에야 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다. 

차 뒤쪽을 확인해 보려는 마음은 아예 없었다.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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