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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4. 2024

지난밤 2화

걱정

집안은 부엌의 비상등만 켜져 있고 불은 모두 꺼져있다. 마누라야 텔레비전 보다가 잠들었을

테고 아들놈의 방에서도 불빛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방안을 확인해 봤겠지만,

오늘은 먼저 욕실로 향했다. 샤워하는데 피투성이 너구리가 계속 연상됐다. 나는 너구리의 피를

씻어 내기라도 하듯 정성 들여 비누칠을 했다. 평소에 쓰지도 않던 때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았다. 살갗이 빨갛게 달아 오른 후에야 수건질을 멈췄다. 더운물로 오래도록 몸을 헹궜다. 살갗의

따가움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재수가 없으려니 별일이 다 있네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등이 보이는 마누라 옆으로 조용히 누웠다. 아들 녀석의 방문은 끝내 열어보지 못했다. 내 몸에

부정한 게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둠 어둠 보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런 게 로드 킬이구나. 그전까지 가장 큰 짐승을 죽여 본 것은 병아리뿐이었다. 그것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촌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에서 키우던 조금은 컸던 병아리를

옥상에서 던졌다. 나는 그 병아리가 날 수 있을 줄 알고 던졌다. 그렇게 땅으로 내동댕이쳐질 줄은

정말 몰랐다. 사촌 누나가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나를 애써 외면하던 외숙모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내가 죽인

너구리는 어떤 놈이었을까? 바퀴가 덜컥거렸을 때의 충격으로 봐서 새끼는 아니었던 거 같고

어미? 아비?..., 길 건너의 너구리는 분명 큰 놈이었는데...., 중요한 건 너구리 네 식구 중 한 마리를

내가 죽였고 단란했던 한 집안을 파탄 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죽인 것이 아비였다면? 졸지에

가장을 잃은 세 모자는 어떡하나?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 닥친다면 어떡하나?

걱정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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