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 원에 머리를 맡겨?

사장님 많이 늙으셨네요.

by Henry Hong

돈 쓰는데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이발이다.

어차피 머리는 자랄 테고 이번에 망친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마음 가짐이다.

지금보다야 좀 더 신경 썼을 어릴 적, 젊을 적에도 저렴한 이발소를 찾았다.

거울을 마주 보고 앉으면 긴 말 필요 없다.

"앞머리는 조금만요. 옆머리, 뒷머리만 짧게 올려 쳐주세요!"

늘 가던 곳이니 곧 말조차 없어진다.

기다린 순서에 맞춰 앉기만 하면 사장님이 알아서 해주신다.

서로에게 특별한 주문이 있을 리도 없다.

미국 교포가 되면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적당한 이발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한국 여행 중, 동네 시장 구경을 하게 됐다.

실로 오랜만에 찾은 시장이었다.

재래시장은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 호기심을 자극했다.

반찬 집이 많이 보이는 게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면,

왜 나이 드신 사장님들은 외모가 비슷비슷하실까?

어릴 적 봤던 그분들이 그대로 앉아 계신 듯 보였다.

이리저리 구경을 마치고 시장을 빠져나올 때였다.

그 옛날 늘 가던 이발소가 눈에 띄었다.

낯익은 입구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발료 7천 원

빤히 입구를 쳐다보다가 충동적으로 이발소에 들어섰다.

연백이발관정면.jpg


세상에 그때 그 아저씨가 할아버지가 되셔서 손님을 맞으시네.

손님을 받는 게 조금 특이하긴 했다.

"가발은 안 자르고 까다로운 손님 안 받습니다."

내 머리가 가발처럼 보이나 생각하며

"제 머리 가발 아니고 다듬어만 주세요!"라고 말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실내를 둘러보니 도대체가 바뀐 것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자리.

찢어진 만화책에 코를 박고 읽던 그 자리 그대로였다.

정확히 8:2 가르마에 포마드 기름을 바르고 계셨던 이발소 아저씨가

머리숱 듬성듬성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여전히 가위질을 하고 계셨다.

내 차례가 돼서 자리에 앉고 사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30여 년 만에 뵙는 거 같은데 건강은 어떠세요?"

이민자로 살고 있는 사정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연로하신 분들만 손님으로 마주하셔서 그랬는지,

다소 경계하던 모습의 사장님이 그제야 미소를 지으셨다.


중학생 때부터 머리를 잘라 주시던 분에게 중년이 돼서 머리를

맡기는 기분?

솔직히 이발소에 들어서자마자 조금의 후회는 했다.

청결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실내.

이 분이 면도칼을 들고 손이라도 떠신다면..

내가 까다롭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잖아!

연백이발관실내.jpg


"앞머리는 조금만요. 옆머리, 뒷머리만 짧게 올려 쳐주세요!"

사장님의 능숙한 손놀림은 속도의 변화 말고는 변한 게 없었다.

기계 사용은 최소화하고 철저히 가위로 승부를 보셨다.

가위는 4종류를 번갈아 사용하셨다.

안경도 안 쓰셨는데.. 정교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어느덧 이발이 끝났고 세면대 앞에 앉았다.

그런데 수도꼭지가 없네. 샤워기 당연히 없다.

일단 목을 내 빼고 사장님의 다음 행동에 머리를 맡겼다.

아이고 이분이 아직도 꽃에 물 주는 물통을 사용하시네.

한 손으로 비누칠을 하시고 물을 퍼부어 주시는데,

머리를 흔들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세면대를 잡고 있어야 했다.

일관성 없는 물 끼얹음에 숨을 언제 쉬어야 할지도 몰랐다.

숨 쉬는 타이밍을 골라야 하는데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헷갈린다.

이거야 원 물고문을 받는 건지 머리를 감는 건지..

길지 않았던 머리 감기가 길게만 느껴졌다.

어릴 적 공포가 떠 올랐다.

몸이 따가워 머리는 감아야겠고 머리 감기는 고문처럼 느껴지고..

그 어릴 적 딜레마였다.

역시나 인간은 공포의 기억이 오래가나 보다.

연백이발세면대.jpg


이발을 마치고 사장님의 허락하에 기념사진 몇 장을 찍었다.

마치 타임캡슐처럼 시간이 멈춰 버린 듯 한 공간.

묵은 때마저 정겨워 보였다.

다음 방문에도 존재하기를 조용히 기원했다.

사람 좋은 웃음의 사장님께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끝으로 이발소를 나섰다.

상쾌한 기분에 그저 행복했다.


7천 원에 자른 머리를 아들에게 자랑했다.

"괜찮지 그지? 그지? 너도 거기서 자를래?"

"아니.. 늙은 군인 같아서 싫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