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에서 C 학점

공부 그 정도면 됐다.

by Henry Hong

늦은 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일리가 없다.

놀라지 않기로 애써 작정하며 전화를 받았다.

시험 성적이 안 좋단다. 공부가 너무 힘들단다.

우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고작 성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건 아들은 너무 심각하다.

난생처음 C 학점을 받았으니 충격인가? 하고 넘기기에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울먹이기까지 하며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된다며 하소연했다.

업어 키운 아들이 힘들다며 하소연을 하니 아빠의 마음이 급해진다.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으로 확대된다.

일단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불안정 한 건 부자가 똑같다.

"어떤 과목이 문제야?"

"해부학."

"아.. 해부학.." 그러니까 아빠는 발음조차 못 하는 단어들로 꽉 찬 해부학..

아빠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 말이다.


"다른 애들은 어떤데?" 괜히 다른 애들 사정을 묻는다.

교수가 점수를 무지 짜게 준단다. 그것도 아들은 불만이다.

F를 받은 애들이 꽤 있는데 A를 받은 애들도 있단다.

"아니 그 어려운 시험에 A를 받는 애들은 도대체 뭐야?"

공부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애들이 A를 받는단다.

아마도 내 주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영재나 천재들을 말하는 모양이다.

책 내용을 대략 훑어보아도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단다.

"아니 그게 인간이야? 정상은 절대 아니지.."

그런 애들은 외계인이라며 A학점 아이들을 비난하는 아빠.

학점 짠 교수와 A학점 아이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일단은 아들과 한편이라는 걸 명확히 하고 싶었다.

아들바보 맞다!


힘들 때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라서 안심을 했다.

힘들 때 합법적, 비합법적인 약물에 의존하는 학생 아주 많다.


이제는 아빠가 아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아빠는 영어 B동사도 헷갈리며 미국 왔어.

아빠가 해봐서 아는데 해도 안 되는 게 있어. 할 만큼 했다면 결과는 중요치 않아.

최선을 다 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걸 배웠으니까. 그리고 노력의 과정은 조금씩 쌓여,

너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야."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를 믿고 살아온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인생은 어차피 우연의 연속이고,

태어났다면 숨거나 도망갈 곳은 없다.

선택한 운이 건, 선택하지 않았던 운이 건,

시간 차가 있을 뿐. 일어날 일은 일어 난다.

내 깐에는 미국으로 도망가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하기 싫은 공부 더 했다.

운명을 즐기진 못 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은 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한 밤에 아들과 긴 얘기를 나누었다.

잠은 다 날아갔고 내 나이가 아들과 같을 때를 생각하게 됐다.

나 역시 고민이 많던 시절. 매일매일 걱정이 샘솟듯 했다.

걱정만 하고 행동은 따르지 않았던 시간.

그래서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던 시절이다.

지금 와서 후회? 이 만큼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행동이 따랐던 아들에게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뭐 이다음에 이불킥 정도 하면 되지.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아들에게 물었다.

"너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 C를 받은 거야?"

"잠도 못 자며 진짜 열심히 했어."

"그럼 됐어 더 이상 결과는 중요치 않아, 아빠가 열심히 했냐고 물은 이유는

열심히 했다는 건, 너 만 알 수 있는 거니까 물어 본거야."

노력을 했다면 너는 이미 승자야 같은 말은 안 했다.

노력한 패자가 어디 한둘인가?


"C 학점 받으면서 배운 건 있어?" 회심의 질문을 아들에게 던졌다.

"응, 클럽 활동을 좀 덜해야겠어."

"뭐 클럽 활동? 너 진짜 열심히 공부한 거 맞아?"

아빠와 아들의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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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학교의 수업량은 상상초월이었다.

일주일에 소화해야 할 수업 내용이나 과제물이 너무 많았다.

모든 수업이 그러니 한 과목에 몰빵 공부를 할 수도 없다.

공부를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도 철저하다.

매주 퀴즈나 시험을 본단다.

교수들의 학생 평가는 철저히 냉정하다. 기대치도 높다.

학교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학생은 낙오할 수밖에 없다.

공부 때문에 놀지 못하는 아들은 늘 기회비용을 생각한다.

공부냐? 놀이냐? 아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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