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충격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느꼈던 문화 충격.
사실 충격받은 게 한 두 가지 일리가 없지만.
그중 하나가 시험 기간에 있는 일이다.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는 어느 틈엔가 땀을 흘리도록 운동을 하고
오는 아이들.
아니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저토록 뛰다 온단말이야.
피곤해서 공부는 어떻게 하려고?
내 걱정하기에 바쁘니 호기심반 우려반의 심정은
남의 일 뿐이었다.
운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게으르다.
지구력을 요하는 모든 신체활동에 자신이 없다.
사지가 뒤틀리는 거 같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한다.
잠시 일어 나 먼 곳이라도 바라봐야 한다.
산에 오르기, 오래 걷기, 오래 달리기 같은 거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진다.
내가 내 약점을 잘 아는 편이다.
이 나이쯤 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
자랑거리는 아니다.
하나 있는 자식은 나와는 좀 달랐으면 하고 바랐다.
아들에게 달리기를 시켰다.
아빠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할 무렵이었으니,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억지로 달리기를 시켰다.
아빠가 같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지켜보았다.
빨리 달리라고 재촉은 안 했지만 걷지는 못하게 했다.
뛰어노는 게 일이었던 아이에게 놀고 나서 달리라고 했다.
아들에게 매일 달리기를 시키기는 했지만 저 혼자 달리기를
시작한 건 고등학생이 돼서였다.
알아서 혼자 달리기를 했다.
어느 때는 이 뙤약볕에? 이 추위에?
조금 과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이해할 수 없었던 미국 학생의 행동을 내 아들이 하고 있었다.
이제 아빠가 궁금해졌다.
"왜 그렇게 달려?"
"달리고 나면 상쾌해져"
"피곤해서 공부는 어떻게 해?"
"달리고 나면 피곤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데."
"정말?"
"정말!"
아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경험을 못 해봤으니 공감이 안된다.
아들은 여행을 가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호텔에 도착하면 피트니스 룸의 위치부터 확인한다.
여행 중이다 보니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걷기도 하는데,
호텔로 돌아온 아들은 트레드밀 위를 달린다.
찬 맥주를 마시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아들이 나 보고도 뛰어 보란다.
뛰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
서로 좋아하는 걸 하자며 타협을 한다.
아들은 30분 정도를 달리고서야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어릴 적에 달리기를 억지로 시킨 게 아빠이긴 하지만
이렇게 까지 달리는 건 정신병의 일종이 아닌 지 의심을 해본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와 비슷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던데..
과도한 엔도르핀 분비에 부작용은 없나?
게으른 아빠가 의심마저 많다.
아들은 바쁜 시험 기간에도 달리기를 한다.
미국 사람 같은 게 신기하다.
아들은 어릴 적 억지로 시켰던 달리기에 고마워한다.
아들이 아빠를 닮지 않아 아빠도 고마워한다.
그래도 난 달리기가 싫다.
걷기라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