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과 반작용
뉴욕에 살며 수많은 한국 이민자를 마주했다.
희한한 건,
작정을 하고 미국에 살려고 온 사람을 거의 못 봤다는 거다.
작정을 하고 미국에 왔는데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은 봤다.
인생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 맞다.
어쩌다 이민자가 됐다.
나이가 지긋한 이민 선배들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이민자가 되셨나요?"
"몰라, 나도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아니 이민 오신 거 아니셨어요?"
"그래도.. 이렇게 오래 있을지는 몰랐지."
마음대로 안 되는 거 붙잡고 있다가 그냥 늙어 버렸단다.
근데 늙어버린 곳이 미국이다 보니 더 서럽다.
20대 때 미국에 와 50년을 넘게 미국 생활을 한 사람이
인종차별을 당했단다.
그러고도 미국에서 밖에 살 수 없다며 한탄을 한다.
먹고살기 힘들 때 한국을 떠났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잘한 일 인지는 모르겠단다.
어르신들에게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시지요 같은 얘기는 못 했다.
인생에는 어쩌다 벌어진 일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이제는 없는 사람들.
둥지는 어린 새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어쩌다 한 일 때문에..
어쩌다 만난 사람 때문에..
그렇게, 가려던 길은 자주 방향을 바꿨다.
바꾼 방향에 언제나 안절부절 못 했다.
이 길이 아니었다면?
단지, 후회에 시간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후회 많은 선배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어쩌다 이민자가 되어,
어정쩡한 자세로 다리를 벌린 채,
한 발은 뉴욕에 다른 한 발은 서울에 디디고 서 있는 모습.
금방이라고 고꾸라질까 어느 곳에서도 발을 못 떼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다.
더 이상 '어쩌다'라는 말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또다시 '어쩌다'라는 핑계를 대겠지..
작용이 있다면 당연히 반작용이 따를 것이다.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뜻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부끄러워서라도,
미국에 살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할까?
이번에는 어떤 반작용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예전 기억이 떠 오른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던 옛 여자 친구.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지금의 아내.
이래서 인생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