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알바를 떠났다.

산골짜기 호숫가

by Henry Hong

방학을 한 아들이 기숙사에서 돌아왔다.

매일매일 애 엄마가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들 덕, 입의 즐거움도 잠시, 아들이 떠날 시간은 또 왔다.

방학 동안 서머캠프의 스탭을 맡게 됐고 뉴욕의 업스테이트로 간단다.

뉴욕시에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산골짜기 호숫가에 차려진 캠프였다.

스태프들은 캠프의 주인공들인 아이들보다 먼저 입소해,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한단다.

일단 입소를 하면 캠프 일의 특성상 8주간,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해야 한다.

야구, 농구, 테니스, 골프 등의 활동과 탐방에 여행까지

일정은 빽빽하기만 하다.

공부만 빼고 다 하는 게 이곳 캠프의 특징이다.

아들을 데려다주는 김에 세 식구가 아예 1박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들이 일하게 될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Lake George에 호텔을 잡았다.

예전부터 백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 Dirty Dancing(1987)의 배경이 되는

캐츠킬(Catskills)과 1시간 여 떨어진 곳이다.

호숫가의 분위기가 어딘지 더티 댄싱의 리조트와 닮아있었다.

백인들이 몰리는 휴양지라 그런지,

아시안을 포함한 유색인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백인들만의 세상?

그들의 세상에 벽을 느낀다.

어릴 적,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평화롭기만 한 산골의 호숫가.

날이 저물면 전기톱을 든 살인마가 날뛰는 곳.

아무튼 길가에서 마주친 필리핀 사람들이 반갑기까지 한

타운이다.

Lake George


한가롭게 거리를 거닐며 식당 앞 메뉴판을 기웃거린다.

비슷비슷한 메뉴에 거기서 거기인 인테리어.

길가까지 웃음소리가 퍼졌던 이탈리안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 더위에 옷을 껴입은 부잣집 노인 커플들.

어린 자식들과 언쟁을 벌이는 젊은 부부.

호기심 어린 파란 눈의 아기들.

두런두런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피자 쟁반을 내려놓는 아저씨의 팔뚝은 그림으로 꽉 차 있다.

주문한 음식인 피자, 오징어 튀김, 파스타 전부 맛이 없었다.

하지만 값이 훌륭했다. 와인까지 한 병 마셨는데..

100불이 안된다.

디저트를 먹기 위해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여점원이 베푸는 과한 친절.

뭘 자꾸 먹어보래? 아시안 처음 봐!

호숫가의 바람을 맞으며 본 모든 것들이 생소했다.

뉴욕시에서 고작 몇 시간 멀어진 곳이 유럽의 낯선 타운처럼 느껴졌다.

인생.. 나도 모르게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여행을 와서야 색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내가 보인다.


다음 날이 됐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케밥(Kebob)을 먹었다.

튀르키예에서 왔다는 주인이 한껏 반가워했다.

한국에는 3번이나 갔었단다.

한참을 전화기에서 사진을 찾더니 한국 친구의 얼굴을 보여준다.

대머리 아저씨 둘이 남산타워 앞에 서 있다.

아들과 작별을 앞둔 아쉬운 시간을 잘도 빼앗겼다.

후딱 먹고 식당을 나왔다.


아들을 어딘가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일은 아빠의 숙명?

유아원 때부터였다.

바이바이를 하고 돌아서자마자, 빈 가슴은 걱정으로 채워진다.

이번에는 백인 투성이의 세상에 아들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아들을 못 믿는 건 지 나를 못 믿는 건 지 마저 혼란스럽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들바보.

아니 바보 아빠인가 보다.


정작 아들은 일, 사람 따위의 걱정은 전혀 없다.

이 아이의 걱정은 오직 하나!

한동안 한국 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에 있다.

왠지 마음이 놓인다.

뭐라도 먹기는 할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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