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변화
안경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 덕분에 미국에서는 말해 뭐 하고 한국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가격에 안경을 공급받고 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가격 차이가 나는 두 개의 안경이 있다.
하나는 고급 안경테, 다른 하나는 보급형 안경테.
고급 안경테는 애지중지 집에서만 쓴다.
집 밖으로 나갈 때는 부담 없는 싸구려 안경을 착용한다. 그게 심적으로 편하다.
노안이 온 이후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안경을 어딘가에 흘리고 올까 걱정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안경줄을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가슴 부위에서 덜렁거리는 안경이 성가시다.
이래저래 외출 시에는 싸구려 안경을 착용하는 이유다.
심적 안정이 몸을 변화시켰는지, 이제 싸구려 안경테만 편하다.
집안에서도 계속 착용한다.
어쩌다 비싼 안경테를 쓰면 어딘가 불편하다.
속옷을 빳빳하게 다림질해서 입은 느낌 같은 거.
코가 불편하다가 귀가 불편하다가.. 안경에게서 거리감을 느낀다.
친구에게 고급보다 싸구려 안경이 잘 맞는다고 하니까,
내가 쌈마이 취향이라서 그렇단다.
뭐 쌈마이!
안경테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착용 시간이 길었던 안경테에 익숙해졌을 뿐이겠지.
제 값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고급 선글라스도 몇 개 있다.
친구가 원가도 안 받았을 거라고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선글라스들이다.
아까워서 아껴 쓰고 있다.
선글라스에 폐가 되지 않는 곳, 차 안이라던가, 평화롭게 걸어 다닐 때만 착용을 한다.
바람이 불고 모래가 휘날리고 소금물에 둘러싸인 해변가 같은 곳에서는 절대 착용 불가.
선글라스에 위험한 곳으로 외출할 때는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선글라스를 챙겨 집을 나선다.
렌즈가 긁히건 말 건, 소금물이 묻건 말 건, 신경 쓸 일 없다.
싸구려에 자유를 얻는다.
호시탐탐 아빠의 선글라스를 노리는 아들이 빌려도 되냐고 묻는다.
아빠는 아들의 행선지를 묻는다.
조용한 야외 활동을 한다면 빌려준다.
별다른 야외 활동 없이,
극장이나 당구장 등을 간다면 안 빌려준다. 두고 오기에 딱 좋은 장소다.
아들과의 대화를 듣고 있는 아내의 얼굴.
한없이 찌질한 대화 속, 창피는 내 몫이다.
아들이 외출을 하고,
아내가 묻는다. 아껴서 뭐 하게?
침묵....
그러게 아껴서 뭐 하게?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침묵을 깨고 아내가 입을 연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핵펀치를 맞았다.
아프다....
이래서 아내와의 대화에서는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요즘 무더위도 한창인데 선글라스 마음대로 써야겠다.
아들에게도 막 빌려줘야겠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란다.
사람일 모른다는 것을 잠시 까먹었다.
취향을 바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