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금지!
1인 술집.
일행이 있는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어떤 대화도 삼가 바랍니다.
술만 선택하시면 됩니다. 안주는 알아서 드립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 이상의 서비스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조용히 면벽을 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
집에서 해봤는데 원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약간 맛탱이 간 느낌 같은 느낌.
"아니 이 인간이 벌써?"라는 아내의 눈초리도 무섭다.
아이러니지만 혼술의 고독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공간.
그렇다고 칸막이 같은 게 있는 건 싫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는 장소다.
면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어떤 공감대가 있지 않을까?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움이 두려운 사람들.
만사가 귀찮지만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
술을 마시면 그래도 조금 나아지는 사람들.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술집 중앙에는 커다란 공용 테이블이 있다.
대화는 할 수 없지만 가끔 상대에게 미소 정도는 보낼 수 있다.
말없이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나보다 더 큰 짐을 진 듯한 사람이 내 앞에서 술을 마신다.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 같다.
내가 취할 랑 말랑 할 때 그가 먼저 취한다.
안심이 된다.
실내에 음악 정도는 흘러야 한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은 안 된다.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
남들과 나누고 싶은 음악이어야 한다.
음악 선택의 이유나 사연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이고,
구석의 주크박스에서 곡을 고르면 된다.
현대화된 주크박스는 세상 모든 음악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단 한 번 대화의 날을 정한다.
그날은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만 참여한다.
말없이 스쳤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참았던 말,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술 좀 작작 마시라고 한다거나..
그만 좀 울라거나..
할 말없는 사람은 다음에 가면 된다.
이 날은 말없는 사람. 즉시 퇴장!
누가 그랬지? 고독은 감옥과 같다고.
감옥에서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고독도 술도 끊을 수는 없고..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1인 술집이다.
이런 술집 어디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