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 본 인간

뻥은 치지 맙시다.

by Henry Hong

나이가 나이다 보니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중년이다.

서로의 대화는 과거의 회상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경험이 드물다 보니 허구한 날,

과거로 무한 반복이다.

근데 희한한 건 어느 누구 하나

젊을 적 안 놀아 본 사람이 없다.

그것도 아주 잘 놀았단다.

놀아 본 인간이란다.

그럼 도대체 누가 공부한 거야?

고등학교 때부터 음주가무에 능했고

대학교 때는 운동에 미쳤고 그것도 민주화 운동이란다.

미팅 얘기부터 나이트클럽, 록카페

하다 못해 술꾼들끼리의 패싸움까지.

모두가 미친 듯이 놀았단다.


모솔로 지내다가 뒤늦게 형수의 구제를 받은

선배가 감투를 쓰더니 무용담에 연애담까지 읊어 된다.

아주 카사노바다.

그냥 잘 나갔단다. 잘 놀았단다.

그런데 미국 와서 이 모양 이 꼴이 됐단다.

아니 누가 오랬어?


솔직히 놀아 본 인간들은 상대를 척 보면 안다.

최소한 같이 놀아 본 관점에서.

저 인간이 좀 놀았네.

저 인간은 망나니였네.

저 인간이 어디서 뻥카를!


사람 가려서 사귀는 내가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면..

경험하지 못해 본 것을 자신의 경험인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나이가 계급인 모임에서 감투를 쓰게 된다면?

모임의 앞 날은 뻔하다. 뻥쟁이들만 남는다.

적정 선을 넘었다 싶으면 조용히 등을 돌리고 만다.

누구 때문에 그 모임에 안 나간다는 소리를 서로 해댄다.

사적인 만남도 마찬가지다.

뻥쟁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실과 다른 말 혹은 틀린 말을 너무 많이 듣게 된다.

대충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당장 같이 앉아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놀고 싶을 때 놀지 못한 것이

무슨 죄일까?

하지만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은 큰 죄다.

신촌 죽돌이가 나이트클럽

'우산속'과 '콜로세움'을 헷갈려하고,

자칭 카사노바가 여고, 여대의 위치를 모르고,

과거에는 소주를 열댓 병씩 마셨다던 사람이

소주 몇 잔에 꼬장을 부리는 건 죄다.


젊을 적 놀았다는 것이 혹은 잘 나갔다는 것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마는

모임 때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가 된다.

시작은 언제나 없던 경험을 자기 것 인양

얘기하는 사람과 그걸 못 들어주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매년 연말 모임에서 볼 수 있는 이벤트다.

내심 주먹다짐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데

절대로 그런 일은 안 벌어진다.

놀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가?

그럼 나는 잘 놀었나?

나는 집에서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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