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뉴 올리언스

악몽의 기억을 더듬는다.

by Henry Hong

예전부터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처음으로 이 도시를 알게 된 건 영화 때문이었다.

엔젤하트 (Angel Heart 1987)

한참 주가를 올리던 미키 루크(Mickey Rourke)가 주연이었고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가 나오는데 감독이 알란 파커(Alan Parker)였다.

안 볼 수 없었던 영화

하지만 두 번은 볼 수 없었던 영화

영화가 끝나고도 잊히지 않는 잔영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땀, 피, 춤.. 영혼, 악마.

하필 주인공의 여정은 뉴욕에서 뉴올리언스로 향한다.

몇몇 장면은 아직도 악몽처럼 떠 오른다.

뉴올리언스는 이 외의 다른 영화에서도 끈적임과 퇴폐미가 묻어나는

도시로 그려진다.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하지만 꺼려지는 도시이기도 했다.

틈이 생겼다.

아들이 겨울방학을 맞아 돌아오기 전에

아내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침 추수감사절 여행 성수기도 지나고 아이들 방학 전이라

비행기와 호텔이 세일을 하고 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

비행기와 호텔만 예약하면 될 일이었다.

렌터카도 필요 없었다.

작은 도시이니 걷거나 전철을 타면 그만이다.


3시간 20분의 비행시간.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도시에 내렸다.

공항을 나오자 마다 마주한 건 습한 공기.

영화를 보며 느꼈던 그 끈적함이 그대로 느껴져 놀랍기만 했다.

정오쯤 호텔에 도착해 바로 거리로 나갔다.

한가했다.

듬성듬성 보이는 관광객들

뉴욕에서 보던 관광객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뉴욕에서는 대도시에서 온 관광객을 봤다면

이곳에서는 시골에서 온 관광객을 본 느낌.

그들은 절묘하게도 스산한 거리와 어울렸다.

아시안이 무척 드물었다.

나는 이곳에서 시선을 끌 수 있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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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이끄는 대로 식당을 갔다.

아내에게도 낯선 도시였지만 식당 같은 건

귀신같이 찾는다.


4박 5일의 여행 기간 중 특이한 음식들을 먹었다.

미시시피강과 멕시코만이 만나는 곳

프랑스와 스페인이 지배를 했던 곳

노예의 강제 이송이 있던 곳

여러 근본이 섞여서 새로운 근본을 만들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기술, 아프리카의 문화, 카리브해의 향신료

그리고 미국 남부의 재료. 그야말로 문화 융합 요리들이었다.

달팽이, 거북이, 이름 모르는 생선들을 먹었다.

솥에 양파, 셀러리, 피망을 기본으로 이것저것 향신료를 때려 넣고

장시간 끊인 스튜류의 음식이 많았다.

솔직히 뭘 먹었는지도 모르며 배를 불렸다. 음식 이름마저 길다.

큰 솥에 무언가를 끓이며 주문을 외는 마녀가

자꾸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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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페인, 아프리카, 카리브해가 뒤섞인 음식에 아시안 조리법이

더 해진 식당이 늘어나고 있었다.


음식에 별 관심 없는 내가 만족스러웠던 건 술이었다.

술이야 어느 곳에나 있겠지만

술을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문화가 좋았다.

술집이 즐비했다.

그리고 너무나 친절했다. 생긴 것하고 모두가 딴판이다.

겉모습은 연쇄 살인범인데 말투는 소녀다.

거리를 걷다가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하면 될 일이었고

심지어 길에서 마셔도 된다. 미국에서는 드문 일이다.

아침 거리에 물청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의아했는데,

먹은 걸 확인한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예전 서로의 등을 두들겨 주던 친구들이 생각나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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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니 긴장이 풀렸다.

여행 내내 어떤 긴장감이 그림자처럼 따랐었다.

긴 손톱의 악마가 내 뒷목을 잡아끌며 골목골목을 안내한 느낌.

미국이지만 전혀 미국 같지 않았던 도시.

이름부터가 프랑스어.

배경 다른 역사, 종교, 문화가 겹쳐져 이상한 조화를 이루는 곳.

늪지대, 고온다습에 최적화된 사람들.

골목 모퉁이를 돌면 영혼을 팔라는 주정뱅이가 튀어나와도

놀랍지 않을 곳.

미국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곳.

식민지, 노예제의 어두운 역사가 흔적으로 남아있는 곳.

흔적은 생소하지 않았다.

그 흔적이 끈끈하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다.

과거의 영등포 뒷골목과 겹쳐졌다.


뉴올리언스, 한 번은 가볼 만한 여행지라 생각된다.

두 번은? 그건 아니올시다.

인생은 모르는 일이라 하지만..

두 번째 방문을 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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