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인생.
몇 년 전, 아들이 막 고등학생이 됐을 때다.
내가 타던 산악자전거와 아들이 자라
더 이상 탈 수 없는 자전거를 미국판 당근 시장에 내놓았다.
자전거를 팔고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된 자전거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상태 좋은 자전거를 싸게 드리는 대신에
두 자전거를 같이 구입해야 한다는 광고를 냈다.
하루 만에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연락을 해 왔다.
약속 시간을 잡는데,
뉴저지에서 뉴욕까지 온다며 교통 상황을 봐가며 연락을 다시 드리겠단다.
비싼 톨비를 들여가며 내가 사는 동네까지 온다니, 자전거가 급한 사람인가?
시간에 맞춰 아들과 자전거를 하나씩 타고 만나기로 한 동네 공원으로 갔다.
구입자는 4-5학년 정도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중고 자전거를 사러 오는 아빠와 아들을 난생처음 마주 한 순간이었다.
솔직히 뭐가 자랑스럽다고 아이까지 데리고 왔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보자마자 밝은 얼굴이 되었다.
아이의 아빠는 행여 자전거에 이상이 있을까 매의 눈으로 자전거를 살폈다.
시승을 하고 브레이크와 기어를 테스트했다.
옆에 선 채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이의 아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겠다고 했다.
연식이 좀 오래된 승합차 트렁크에 전기톱 같은 크기가 큰 연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전거를 싣는데 애를 먹었다.
백오십 불.
참 꼬깃꼬깃한 돈이었다.
20불짜리와 10불짜리가 섞여 있었다.
봉투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좀 당황스러웠다.
충동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집에 안 쓰는 스쿠터가 있는데 드릴까요?"
"너 스쿠터 탈래?" 애 아빠가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가 수줍은 듯 빙그레 웃었다.
나는 잠깐 기다리시라고 하고 스쿠터를 가져다 드렸다.
어차피 아들은 타지 않으니 거미줄이나 쌓일 물건이었다.
잘 타시라고
잘 타겠다는 인사를 주고받고 자전거 구입자와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아들의 허락도 없이 스쿠터를 준 게 떠올랐다.
"너 스쿠터 탈 거면 어른 용으로 사줄게."
밝은 얼굴의 아들이 자기는 스쿠터 탈 나이가 지났단다.
"그래 우리는 새 자전거 살 고민이나 하자."
남의 손때 묻은 중고 자전거를 왜 사? 하는 마음이었다.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가격 비교를 하고
쇼핑몰에 갈 때면 자전거에 앉아 보는 테스트를 했다.
이때 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란다.
지구 종말 같은 분위기로 치달았다.
상점은 닫히고
자전거의 값은 올라가고
자전거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모든 곳의 문이 닫힌 상황에서 자전거라도 타려 했는데
자전거가 없다.
중고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매매 목록에 오르자마자 사라지 건 했다.
매물에 오른 자전거를 사러 갔다가 쓴웃음을 지며 돌아온 적도
몇 번 있었다.
팔면 안 될 것 같은 자전거를 팔려는 자들이었다.
손 봐서 타면 된다는데 그런 기술이 있었으면 자전거 공장을
세웠을 거다.
중고 시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잊지 않고 아내가 한마디를 했다.
"멀쩡한 자전거 팔아 놓고 뭐 하는 짓인지...."
그러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코로나 기간 동안 자전거 중고 매매는 나의 작은 일거리가 되었다.
몇 번의 사고파는 거래가 있었다.
물론 중고매매에 아들을 데리고 가는 일은 없었다.
코로나를 견디는데 자전거 중고매매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생판 처음 보는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불신을 믿음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묘미.
시간은 흘렀고 얼마 전, 밤늦은 시간이었다.
취미 생활하듯 중고 시장을 살피는데
상태 좋아 보이는 접이식 자전거의 광고가 눈에 띄었다.
두대를 싼값에 같이 판단다.
이미 식구 수대로 자전거가 있지만 접이식 자전거는 없다.
늦기라도 할까 봐 손이 빨라진다.
[밤늦게 죄송하지만 아직 자전거 판매 중이시면 제가 사겠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 두대를 살피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고,
20여 분의 운전 거리를 혼자 가는 게 심심했다.
이제는 아빠를 이해할 나이도 됐으니까.
일찌감치 판매자를 만나기로 한 쇼핑몰 주차장에 도착했다.
판매자는 자세히 쇼핑몰 안쪽의 벽에 주차하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상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서게 되는 중고 매매.
서로의 문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자가 강도로 돌변하거나 지명 수배자이거나
연쇄 살인마가 아닐까 라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번 판매자는 예의 바르고 철자와 띄어쓰기에 신경 쓰는 듯 보였다.
혹시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추운 날씨였지만 나는 알아보기 쉽게 차 밖으로 나가 서 있었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파란색 BMW X5가 내 옆에 섰다.
내 차는 16년 된 SUV다.
30대의 운전자가 눈인사를 보낸다. 아들이 차에서 내려 내 옆에 선다.
차에서 내린 판매자의 재킷은 몽클레어다. 나는 없지만 그 흔한 검은색 몽클레어.
그가 서둘러 트렁크 문을 열었다.
하얀색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자전거 용 안전벨트가 있었다.
그 딴 거 처음 본다.
"아기가 태어나고는 전혀 못 탄 자전거예요. 상태 좋습니다."
판매자는 자전거를 펴고 접는 법을 알려줬다.
야간용 라이트와 물병, 전화기 거치대도 함께 주겠단다.
나는 준비해 간 봉투를 건넸다.
판매자는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별 문제없어 보이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주차장을 서서히 벗어났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판매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감사합니다. 아드님 하고 안전히 즐겁게 타세요]
감사합니다. 잘 타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내고 나서야
내 몰골과 아들의 몰골을 살필 수 있었다.
하필 전 날 온 눈 때문에 해진 스키 바지에 허연 제설제 자국이 묻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아들도 가관이다. 급하게 끌려 나왔으니 후줄근한 운동복 바지에 발목이 보이는 운동화.
눈 치울 때 입었던 낡은 재킷이었다.
중고 거래 나서는데 멋 부릴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너무 거지 같았나?
몇 년 전 기억 때문에 자책을 한다.
멋쩍은 웃음이 났다.
옆에 아들이 웃음의 이유를 묻는다.
"그러니까 말이지.. 몇 년 전 우리가 자전거 팔 때 기억나? 아빠와 아이가 왔었지...."
그렇게 인생은 돌고 도나 보다.
아들을 데리고 중고 매매에 나섰던 남자를 좋게 보지 않았다.
행색으로 그 남자를 평가했다.
당연히도 남자의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남자를 마주하고는 싸구려 우월감을 갖기도 했다.
참 어이없는 우월감이었다.
인생은 이렇게 돌고 도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