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했던 시간
얼마 전, 아들이 다급한 연락을 해왔다.
겨울 방학 내내 뉴욕에 같이 있을 때는 아무 얘기가 없었는데,
새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콘택트롄즈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
잔소리를 퍼부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아빠는 참았다.
부랴부랴 안경점에 연락해 가장 가까운 주말에 예약을 했다.
그게 2주 후의 일요일이었다.
미국은 안경점 가는 게 이렇게 힘들다.
렌즈 처방을 받기 위해 아들이 뉴욕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온 아들을 만났다.
애 엄마까지 세 식구가 점심을 같이 했다.
대만 국숫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안경점에 갔다.
안과의에게 처방을 받았다.
렌즈는 2주 정도가 걸린단다. 참 빠르기도 하지..!
렌즈가 나오면 아들에게 우편으로 보내 주기로 했다.
안경점을 나와서는 근처 커피숍에서 디저트를 먹었다.
그리고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가서
아들과 헤어졌다.
아들을 만난 시간은 고작 4시간 30분.
아들은 생각보다 공부량이 많아 힘들다고 했다.
일주일에 3~4번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한단다.
농구나 헬스 운동을 주로 하는데 근래에 수영장도 가끔 간단다.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도 잘 지낸단다.
같이 있으면서 나눈 대화 중 기억나는 건 고작 저 정도다.
물론 옆에 있던 아내가 아들과 더 많은 대화를 했지만
그들의 대화는 기억이 더 안 난다.
왜? 아들의 얼굴만 바라보느라 그랬나?
그동안 나는 아들의 수많은 첫 경험의 증인이었다.
첫 뒤집기, 첫걸음, 첫 주사, 유아원, 학교, 극장, 야구장....
첫 경험들은 물론이고 첫 시도의 순간도 같이했다.
연필 잡기, 운동화 끈 매기, 자전거, 수영, 농구, 등산....
많은 시간을 같이 기뻐하고 슬퍼했다.
좀 컸다는 아들이 몇 주후 봄 방학에는 집에 못 오겠단다.
은근히 아들의 봄방학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하이킹 계획이 있다고 일방 통보를 한다.
문득 이제는 아들의 첫 시도나 첫 경험을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눈앞에 스쳤다.
쓸쓸했다.
나누고 싶은 나의 첫 경험들이 아직 많은데 아쉬웠다.
다가 올 실패에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없어 서글펐다.
이렇게 늙는구나 생각 드니 화가 난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들이 결혼을 하면 옆집으로 이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