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행

피를 보겠단다.

by Henry Hong

2026년을 맞이하자마자 예상 못한 여행을 하게 됐다.

아들이 10여 군데에 보낸 이력서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장소는 뉴욕에서 4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도시다.

인터뷰는 화상으로도 가능했다.

그런데 아들은 직접 가서 대면 인터뷰를 하겠단다.

아내도 가서 보자며 옆에서 거든다.

여름 방학 동안의 일이지만 거의 3개월을 있을 곳이니

주변 환경도 봐야 한단다.

아직 합격을 한 것도 아닌데?

내 아내는 자식 주변에 맴돈다는 헬리콥터 맘이 틀림없다.


아빠로서 가족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번에도 길을 나섰다.

아들이 지원한 곳은 펜실베이니아의 어느 종합병원이다.

세 곳의 병동에 지원을 했고 세 곳 모두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다행히 한 날에 세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지원한 부서는 다음과 같다.

Cardiac 심혈관

Oncology 종양(암)

Surgical 외과(수술)

부서를 옮겨 다니며 진행할 인터뷰는

오후 12시 30분에 시작해 4시 30분에 마칠 예정이다.


시골 분위기가 팍팍 드는 펜실베이니아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음식 값이 저렴했다. 맥주 값도 쌌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빠 혼자 즐겁다.

내려오는 내내 엄마와 아들은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간다.

술 김에 용감해진 아빠는 뭐라도 될 테니 걱정 말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다음 날이 되었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아들에게 두둑한

아침을 먹였다. 미련했던 걸까?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아들 때문에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어차피 좁은 타운이라 별 상관은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행이다.

아들을 병원 앞에 내려주고 돌아섰다.

다시 차 안에는 아내와 둘이 남았다.

세 사람이 되려면 앞으로 4시간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근처에 쇼핑 아웃렛이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상점 두 곳을 들어가 보고 포기했다. 엄동설한에 무슨 쇼핑?

호텔로 돌아 가 누워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 가 T.V를 보다가 잠깐 눈을 붙였을까.

선잠을 자다가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10여분 거리를 운전해 아들을 만났다.

긴 인터뷰를 마쳐 피곤할 줄 알았던 아들은 밝기만 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단다.

"누가 널 싫어하겠어!" 아들이 대견스러워서인지..

아빠가 급발진을 한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낮에 갔던

아웃렛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들이 원하는 스포츠 상점 몇 군데를 들어가 보았지만 빈손으로 나왔다. 당장 필요한 게 없다네. 그렇지 당장 필요한 게 여기 왜 있겠어!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내와 아들의 눈과 손이 빨라진다. 미국 음식이 느끼하다며 고른 식당이,

이름도 촌스러운 '와사비' 일식집이다.

예상대로 중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일식집이었다.

생선 맛도, 우동 맛도, 데리야끼 맛도 다 그저 그랬다.

생맥주도 없었다. 그런데 손님은 많았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띄었다.

아내와 아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이 추위에! 진짜?

입가심을 위해 나도 슬며시 하나를 고른다.

세 식구가 얼굴을 마주 보고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데 아들이 문자를 받았다.

00 병원을 지원해 준 것에 감사하고 합격을 축하한단다.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을 보내겠단다.

이렇게 빨리? 보이스 피싱 아닌가?

지원자가 단 한 명이었나? 그럴리는 없다. 아들의 친구 몇 명도 지원을 했다.

믿기 어렵지만 인터뷰 당일에 합격 소식을 받았다.

원하는 병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기쁜 마음도 잠시.. 고민이 시작됐다.

아들이 진짜로 원했던 맨해튼의 병원과 필라델피아의 병원에서는 아직 인터뷰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지금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나? 세 식구가 또 떨어져 지내야 하나?

돈은 얼마나 주는데? 역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심정은 달랐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갑자기 잔머리들을 굴리기 시작한다.

결론은 지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아들이 응급실 병동의 경험을 원했기 때문이다.

기꺼이 피를 보겠단다.

아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마취의를 목표로 하고 있는 아들은 차곡차곡 경험을 쌓고 있다.

인터뷰 질문자는 병동마다 3명이 있었고 인터뷰는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그간 겪었던 업무 내용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됐단다.

00 병원을 지원하게 된 이유, 자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

팀워크에 대한 의견에 미래 계획 등을 물었고 질문이 끝나고는 자연스레 아들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주택 환경, 주변의 치안,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맛집 이야기까지 오갔단다.

책상 앞에서의 인터뷰가 끝나고는 병동을 돌며 간단한 실습 평가도 있었다.

청진기 사용, 맥박 재기, 환자 옮기기 등을 보였단다.


이 경험이 없으면 다음 경험을 할 수 없는 의료 시스템.

매 번 경험의 위기를 넘기고 나면,

의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사람이 의사로서 사회에 나가도 될지를 매번 시험한다.

시험을 당하는 자는 자기 검열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내가 의사를 해도 되는 걸까?라는 원초적 질문.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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