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기 쉬운 사람

유전자

by Henry Hong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아들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를 만난다고 너무 흥분해 있었을까?

아들은 맨해튼에 도착해 기차를 갈아타며 잘못된 기차에 오르고,

만나기로 한 역이 아닌 다른 역으로 가 버렸다.

운전 중이었던 나는 급히 차를 돌리고,

잘못 탄 기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노선도를 확인하고,

마음은 급해지고..(하필 올라 탄 기차가 우범지역 행이다)

열은 받고.. 오밤중에 기차 추격전을 벌인다.

옆 좌석의 아내에게 하소연을 한다.

"아니 기차를 한 두 번 탄 것도 아니고..

유럽 같았으면 다른 나라로 갈 뻔했잖아!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래!"

"누굴 닮긴 너 닮아서 그렇지!"

역시 아내는 내편이 아니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너무 흔한 말.

약점 많은 아빠는

알면서도 외면하는 말이다.

닮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닮았다.

아들을 보며 나를 돌이켜 본다.

당연히 내가 보인다.

교실, 사무실, 어느 시끌한 카페일지라도

제 할 일 하는 사람은 제 할 일을 한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쓸데없이,

주변의 영향을 100%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착한 친구들과 어울리면 착해졌고,

술, 담배 중독자와 어울릴 때는 내가 중독자가 됐다.

사회생활도 딱 끼리끼리 모이는 수준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내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정도는 눈치챘다.

언젠가부터 사람을 가려 만나게 됐다.

물들기 쉬운 사람임을 자각했는데,

시커먼 인간들을 가까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박물관두상.jpg


나야 뭐 물들기 쉬운 사람으로 중년을 맞았으니

이 색 저 색을 거쳐 겨우 잡색깔..

그렇다 쳐도 둥지 떠난 아들이 걱정된다.

주변에 어떤 친구들이 있을지?

주변에 어떤 어른들이 있을지?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색으로 물들을지?

걱정 끝에 기껏 하는 충고가

나 어릴 적 부모님에게 듣던 잔소리와 너무 닮았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 맞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쩌랴 그 모습 또한 나 인 것을..

그래서 아들이 더 걱정된다.

덤벙이, 얼뜨기, 헛똑똑, 허당.. 별게 다 유전이다.

아들이 주변에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최소한 아들이 물들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살았으면 좋겠다.


멍청하게 아무 기차에 올랐던 아들을 만났다.

서두르다가 멍청한 짓을 했다면서

실수를 빠르게 인정해 버린다.

내가 아내에게 쓰는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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