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는구나
술친구가 돼버린 한 살 위 동문 선배가 있다.
선배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어릴 적부터 가끔 봐왔던 아이가 덩치 큰 신랑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큰 웃음이 아이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아주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선배의 옛이야기가 있다.
선배가 20여 년 전 이민을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미국에 오자마자 할 수 있었던 일은,
영어 할 일이 없었던 세탁 공장의 일이었단다.
부부가 하루에 12 시간을 뜨거운 스팀 앞에 꼬박 서 있어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일하는 곳은 버스에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왕복 4시간 거리였단다.
월세가 싸다고 골라준 건 선배의 친형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면,
(지인도 돈은 받았단다.)
두 살 위 누나가 동생의 간식거리를 챙겼단다.
네 식구가 밤에 모이면 어느덧 내일을 준비해야 할 시간.
미국에 왜 왔냐고!
아이들 몰래 다투던 밤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던 시간이었다고 선배는 기억한다.
선배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날은 유난히 더운 날이었다.
여름도 아니었는데 습도가 치솟는 바깥 날씨에
스팀의 열기가 가득 찬 실내는 제정신으로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책상을 지키던 선배가 예상도 못한 일이기도 하다.
온몸이 땀에 젖어 스팀다리미를 위아래로 놀리고 있을 때
이탈리아 계 사장이 선배를 부르더란다.
전화를 건네받고 몇 번이고 되묻다가 가까스로 알아들은 건
“네 딸이 아프다고 하니 데려가라!”
“지금?”
“응, 바로 지금!”
전화를 끊고
선배가 사장에게 한 말은
“내 딸 아파.”
형수가 놀랄까 봐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공장을 나섰단다.
하지만 허둥대는 선배의 모습에 발만 동동 굴렀을
형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지하철을 어떻게 탔는지,
몇 번 버스를 탔는지, 어떻게 걸었는지, 아니 뛰었는지
아무 기억이 없단다.
제발 별일 아니기를 기도하듯 읊조리기만 했다.
학교 경비의 안내로 교무실을 찾았고 잠시 기다리니
왠 걸로 딸아이와 아들이 같이 오더란다.
선생님들 눈치도 있고 해서 아이들을 데려간다는 사인을
어느 노트에 하고 일단 교문 밖으로 나왔단다.
어디가 얼마나 아파? 동생도 아프데?
아빠의 심각성은 안중에도 없던 아이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키득거리기까지 한다.
그 해맑은 웃음.
뜸을 들이고 한다는 소리가,
“아빠, 엄마 보고 싶어서 거짓말했지.”
아이 둘은 더 크게 웃으며 아빠를 올려다 보더란다.
아빠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만 나왔다.
집에 도착해 아이들에게 간단히 샌드위치를
챙겨 주고 공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빠가 엄마 데리고 올게, 문 잘 잠그고 있어."
기운 빠진 다리로 터덜터덜 걸으니
아까는 안 보이던 풍경이 조금씩 보였다.
평화롭기만 한 거리 하지만 낯선 풍경.
느린 걸음인데도 선배는 숨이 차 올랐다.
무엇인가가 목젖을 틀어막고 있었다.
참고 참아,
지하철을 타려고 들어서는 계단이었다.
후끈한 공기를 마주하며 와락 눈물이 터져 버렸다.
터진 눈물에 어쩔 줄을 몰랐다.
창피하게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깨는 흔들리고 억억 소리마저 났단다.
말도 안 통하는 학교에서 동생을 보살펴야 했을 딸 생각.
아빠,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딸을 봐라 봐야 했을 아빠.
그날 선배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땀 젖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을 남자.
승강장 구석의 벽밖에는 의지할 곳 없었을 남자.
그 남자가 오늘은 신부를 보며 울었다.
이렇게 잘 큰 신부를 보며,
흰 장갑의 손을 연신 눈가로 가져갔다.
슬쩍 콧물을 닦기도 했다.
선배는 신부 보다도
신부의 엄마 보다도 더 울었다.
분위기상 얼레리 꼴레리 놀리지는 못했다.
나는 내 아들 결혼식에서 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