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자의 최후
더위가 저만치 멀어졌다.
이상하리 만치 비슷한 뉴욕과 서울 날씨.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을비가 이어지다가 시원한 하늘을 부끄럽게 보인다.
뙤약볕 여름, 징검다리 응달을 골라 걷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강렬한 태양 빛 아래 어쩔 줄을 몰랐었다.
젊음에 몸 둘 바를 몰랐던 그 옛날처럼..
좋은 줄도 몰랐던 젊은 날들
그 뜨거움을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뜻대로 되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찬바람을 맞아서일까?
지금 겪으라면 절대 못 할 날들이
몸이 아스라 져라 그립기만 하다.
무겁기만 했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아들을 슬쩍슬쩍 훔쳐본다
아직도 아기 때 보이던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할 때가 있다.
주변의 일에 놀라는 눈.
경외감이 가득한 눈.
아빠는 그럴 때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도 그럴 적이 있었지라는 그리움.
어느덧 경외감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노쇠함이 걱정을 만든다.
이 아이가 그 뜨거운 여름을 버틸 수 있을까?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훈수를 둔다.
"이번 학기 계획은 세웠어?"
"당연히 세웠지."
"아빠는 그딴 거 없었는데.."
눈 커진 아들이 할 말을 잊은 듯 쳐다본다.
"계획이 없었다고?"
"계획 세울 시간이 어디 있어? 하루하루 버티는 게 목표였는데."
"그래도 계획은 세워야지."
"그래서 아빠가 얘기하는 거야. 계획이 없으면 아빠처럼 된다고.
무계획자의 최후 같은 거지."
아들의 얼굴에서 놀람을 읽었다.
이렇게 확 솔직할 줄은 몰랐을 거다.
협박성으로 한마디를 보탠다.
"너 아빠처럼 되고 싶으면 계획대로 행동하지 말아라!"
아들이 겪을 그 뜨거운 여름.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를 맞아야 할 그 시간.
이유가 없거나
혹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잠 못 이루던 새벽들
경험해야 견딜 수 있는 시간들.
젊음을 몰랐던 시절
늙음을 배우고 있는 지금
아빠는 할 말이 많지 않다.
건투를 빈다 아들!
아들이 기숙사로 떠났다.
좁은 집이 넓게만 느껴진다.
또다시 아내와 멀뚱멀뚱 둘이 남았다.
아 이제 뭘 하면 좋을까?
이러니 넷플릭스가 인기를 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