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와 위로 사이

최선과 최악

by Henry Hong

살다 보면 자연스레 주고받는 게 축하와 위로가 아닐까.

누군가를 축하하고

누군가를 위로한다.

당연히도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

축하도 없고

위로도 없는

인간관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어느 유튜브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전한 건,

슬픈 일에 대한 위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게 남이 위기를 겪을 때다.

하지만 축하는 쉽지 않다.

축하를 할 때는 시기와 질투가 내면에 깔려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하기가 힘들단다.

그래서 축하할 일에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라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민족이잖아.

남이 잘됐다고 하면, 내 신세를 돌이켜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방송을 봤을 때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잖아.


두 달 사이에 축하와 위로를 받을 일이 있었다.

당황스럽게도 살면서 한 번밖에 겪지 않을 일이

두 달의 시간 차로 벌어졌다.

축하받을 일은 아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한 거였다.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셨다.

자식 덕분에 칭찬을 받기까지 했다.

남 부러울 게 없다는 게 이런 거 구나를 경험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들과 한국에 다녀오고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손주가 대학생이 됐다고 동네에 자랑을 하시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에 슬픔보다도 이게 생시인가?를

생각하는 날들이었다.

장례식을 거치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정신이고 뭐고가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커다란 슬픔 앞에 어린아이가 된 양 한 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본분을 잊어가던 때 위로를 해 준 사람이 없었다면

슬픔과 우울은 좀 더 지속됐고 남편과 아빠로 돌아오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 믿는다.

짧은 기간에 축하와 위로를 겪고 느낀 건,

슬픔을 나누고 위로해 준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거다.

살면서 축하를 받았던 일들

예를 들어 결혼이라던가, 자식이 아이비 대학에 합격했다거나 하는 일은

남들의 축하 없이도 혼자 충분히 기뻤다.

가만히 있다가도 비실비실 웃음이 새 나왔다.

하늘만 올려봐도 미소가 멈추지 않을 때니

솔직히 누가 축하를 해줬는지 기억도 안 난다.

기억을 되살리려고 사진 앨범까지 꺼내봐야 하는 수고도 귀찮다.

축하를 받기는 했다.

그에 반해,

위로받은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최악의 상황에 같이 있어 준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또렷하다.

위태로운 분위기에 본인들도 편치 않았을 자리에서

묵묵히 내 곁을 지켜 준 사람들을 어찌 잊을까.

공기마저 낯설게 숨을 조여올 때,

내 편이 있어 얼마나 든든했던가.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축하를 건넨 사람들, 위로를 건넨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다.

받은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설사 그 사람들이 무슨 마음을 갖든 무슨 소용이 있겠나.

축하 건, 위로 건,

내 옆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는데.

마음 받아주는 마음이 있으면 그만 인 것을.

욕심이 하나 있다면,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 보다는 축하할 일이 많았으면 한다.

혼자 기뻐서 기억도 못 하겠지만 축하를 해주련다.

위로?

위로를 해야 한다면 조용히 옆에 있어 주련다.

위로라는 게 원래 말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어차피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