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엔젤스라는 도시

깊은 그림자

by Henry Hong

뉴욕 반대편의 로스앤젤레스를 십여 년 만에 방문했다.

때마침 뉴욕은 한파에 눈폭풍이 몰아쳐 도시 전체가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쌓인 눈이 언제 녹을지 걱정이었는데

비행기에 갇혀 6시간을 날아가니

푸른 하늘에 야자수가 맞아준다.

미 동부는 이상 기온 한파

미 서부는 이상 기온 폭염

이게 같은 나라 맞나? 미국말 쓰는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여행은 아니었다.

더 늙기 전에 아내의 이모와 사촌들을 만나고

아내의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되는 여행이었다.

내 역할이라면 영어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이것도 피곤하긴 하다.

가끔 추임새를 넣어 주면 됐다.

나이 드신 이모님과 이모부님을 만나면,

뉴욕 소식을 전해 드리며 대화 상대가 되면 될 일이었다.

당신의 자식들은 나처럼 한국말을 못 한다.

애초에 나에게 여행 계획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내의 지시에 따라 렌터카만 운전하면 만사가 편하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제때에 먹여 주기만 하면 되니,

피차 편하긴 마찬가지다.


한껏 여유로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도시의 어두운 면이 자주 보였다.

치안이 안 좋은지 가는 곳마다 경비원이 있었다.

우범지역이나 비싸고 우아한 곳을 간 게 아니었다.

보쌈집의 주차장에 무장 경비원이 있었다.

경비원은 가는 곳마다 눈에 띄었다.

뉴욕에서 온 내 눈에도 엄숙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치안이 더 안 좋아진 건가?

야자수의 거리를 활보하는데 공포감과 부담감을

느껴야 한다니 아쉽기만 했다.

더구나 캘리포니아는

각종 스포츠 이벤트로 활력이 넘쳐야 할 시기인데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부의 이민 정책 때문에 밤에는 곳곳에서 농성마저 벌어졌다.

호텔 방에서 그 모습을 생중계로 보고 있자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일찍이 천사들의 도시로 불렸던 도시 Los Angeles

할리우드가 있는 라라랜드, 꿈과 낭만의 도시.

이 도시는 황폐한 사막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거리의 구석구석은 노숙자들의 오아시스가 된 듯 보였다.

인도 한쪽에 버젓이 자리 잡은 텐트촌. 규모도 크다.

마약에 취한 사람들.

시선을 피하며 지나치기에는 너무 쉽게 눈에 밟혔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높은 물가 때문에 생기는 문제 일 텐데

이런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 나갈 수나 있을까?

다음 세대에게 골칫거리만 물려주려는 우리 세대.

갑자기 미안해진다.

천사들의 도시라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비단 로스앤젤레스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뜨거운 햇살과 대조가 되어서인지 그림자는 깊기만 했다.

삭막한 도시의 분위기는 한인 타운에서 도드라졌다.

워낙 침체된 경제 상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어딜 가나 미소 띤 얼굴을 찾기 힘들었다.

십여 년 전과 너무 달라진 모습이었다.

맑은 날씨에 어울리는 미소를 가졌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웃을 일 있는 곳으로 떠나버린 걸까?

물가가 싼 곳으로 이사를 간 건가?

한인 타운의 물가는 뉴욕에서 온 나도 놀랍기만 했다.

로스앤젤레스는 뉴욕보다 거리상으로 한국과 가까운데도

뉴욕만큼 한국 물품의 가격이 비쌌다.

과자, 라면, 소주 전부 비쌌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뉴욕보다 한국 상품이 다양했다는 것

정도였다.

어릴 적 즐겨 먹던 바나나킥이 아니고 메론킥이 다 있네.


어떤 기대도 없었던 여행이었지만

향수 같은 걸 느끼고 싶었다.

꿈의 도시, 영화의 도시였으니까.

소싯적에는 할리우드 키드였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깊은 그림자만 확인한 것 같아

아주 조금 슬퍼진다.


위의 두 사진이 같은 나라 맞다.


아내의 친구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오란다.

날씨 좋고 살기 좋단다.

이 도시는 공허한 사막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니,

최소한 등골 쑤셔가며 눈 치울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 사람아! 여긴 지진도 있잖아!라고는 말 못 했다.

괜히 싸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