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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Aug 07. 2021

아내와의 신사협정

무엇을 먹을까요?

여자 친구였던 아내가 나를 위해 처음으로 해 준 음식은 스파게티였다.


여자 친구가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먹을 걸 기다리는 강아지 모양. 옆에 마냥 서 있던 나.

그 당시 홍콩, 대만, 일본 친구들과 같이 살던 시절이었고.

남이 해주는 음식은 뭐든 맛있고 좋을 때였다.

데이트를 할 때는 아무래도 싼 식당 위주의.. 한국 식당이 아닌 것들이었다.

뉴욕은 한국 음식이 비싼 음식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자란 여자 친구의 입맛에 맞춘

장소를 찾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한 이후에도 입맛을 아내에게만 맞출 수는 없었다.

남자들 원래 결혼하면 좀 바뀝니다.


음식 만드는데 취미가 있는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난데없이 만들어 주는 헝가리식 치킨 이라던가..

영국식 쉐퍼드 파이(Shepherd's pie) 같은 생소한 음식을 매일 먹을 수는 없었다.

이틀 정도 먹고 나면 뱃속에서 슬슬 욕을 하기 시작한다.

느끼한 음식 때문에 못살겠다! 나도 좀 살자! 고..

마냥 사랑으로 극복하기에는 힘든 역경이 있다.

나. 김치 먹고 자란 사람이라고!


아내와 맺은 신사협정

하루에 한 끼는 한국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달려 간 서점..  한국 음식 만드는 법.. 

지금이야 뉴욕에서도 한국의 케이 팝처럼 K food이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유튜브도 없었고 영어로 된 한국 음식책이 흔치 않던 시기였다. 


서점을 뒤져,

책을 사고 열공에 들어 간 아내

음식을 열심히 만든다.



만들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김치볶음밥이나 고기 굽는 것 밖에 모르는 나.

영어로 된 요리책은 내가 보나 아내가 보나.. 대동소이. 문맹에 가깝다.

책으로 시작된 아내의 한국 요리는

모든 음식이 퓨전이 되었다.

어딘지 뭐가 조금 이상한데 이유는 모르겠다.

예전에 먹던 어머니의 음식과 비교가 불공정 하지만..

입 맛이라는 게 쉽게 변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책에 나온 대로 따라 했지만, 결과는 항상 어떤 모자람 혹은 넘침.



한 집에 살면서 당연히 아내와 먹는 시간은 늘어 갔고, 지금은 같이 먹는 입도 하나 늘어있다.

그 사이 퓨전 음식은 우리 집 레시피가 되었고,

태어나서부터 퓨전 한국 음식을 먹기 시작한 아이는..

한국에서 먹었던 한국 음식이 이상하다고 한다.

놀라웠던 것은 나도 이제는 집 밖의 한국 음식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식성, 입맛이라는 게 쉽게 변할 수 없는데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입맛이라는 것이 혹시 맛 자체보다

같이 먹은 시간들에 의해 변화되는 건 아닐까?

단순히 음식에 익숙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게 있다.

나를 위해 재료 준비를 마치고 음식까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마음을 나누는 것이 음식 맛을 다르게 하는 건 아닐까?



좋은 생각을 갖고 식사를 한다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음식이 건 맛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네!?....



무엇을 먹는지는 중요치 않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한 것.







사람이 먹는 음식 맞습니다.


요즘도 아내는 듣보잡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음식 만드는데 실험 정신까지 더해졌습니다.

건강에 좋다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넣고 있습니다.

아니, 국에 토마토는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다행히 신사협정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투정을 부려 봅니다.

퓨전 음식에는 김치가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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