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아니라니까요

감사합니다.

by Henry Hong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유난히 많은 사람이 전철을 채우고 있었다.

전철에 오르고 보니,

보통 때와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매일 타는 퀸즈로 향하는 7번 전철 안.

평상시 같았다면 승객의 대부분은 중국 사람이나 남미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탄 칸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칸도 눈에 띄는 옷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플러싱으로 향하는 전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일본인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언뜻 들어도 한국 사람들은 일본말을 구별할 수 있지 않나!


혼자 무슨 일일까?를 생각하며 귀퉁이에 서 있는데.. 종점을 한 정거장 남긴,

뉴욕 메츠 스타디움 역에서 일본인들 모두가 내리는 거였다.

전철의 칸칸에서 내리는 무더기의 검은 양복에 흰 셔츠, 동양인들이 생소했는지

다른 승객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썰렁해진 전철 안.


오늘 게임이 있나 본데..

일본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건 알았어도.. 양키스도 아니고,

메츠를 좋아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리던 일본인 룸메이트가 돌아오자마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일본 사람들 오늘이 무슨 날이야?

메츠 구장에서 무슨 행사 있었어?


별일 아니라는 듯. 룸메이트는..

"엘에이 다저스의 노모가 오늘 선발 투수였대!"


야구장내.jpg



그렇지 않아도 일본인 투수 노모가 한껏 기량을 뽐낼 때였다.

솔직히 부럽기만 했다.


그때는 박찬호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었다.

자기 나라 투수가 던진다고 홈팀 경기도 아닌데 응원을 위해 모인 사람들.

우리나라 선수는 언제쯤이나 메이저 리그에서 뛸 수 있을까?

그저 부러운 마음이 드는 밤이었다.


20년 정도가 흘러


상황이 역전돼 일본인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분위기다.

이제 메츠 구장에서는 매년 한국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다.


2021년 7월 25일 한국의 날에는 토론토의 류현진이 선발 투수였다.

매년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식전 행사들, 전통 춤 공연도 있었고,

태권도 시범 등도 있었다.


게임 결과와 관계없이 교포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행사가 매 년 열린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미국에서 느꼈던 열등감을

파괴시켜 준 고마운 선구자들이 박찬호, 박세리, 싸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보여 준 사람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일본은 커다란 벽이었다.

나이 드신 윤리 선생님은 우리가 일본에 30년을 뒤져 있어 영원히 따라 잡지

못 할 거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하시 건 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1980년 대 만해도

미국과 일본의 문화와 상품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두꺼운 영화 역사책 속에 한국은 단 한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시안 영화 부분은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기타노 다케시까지의

일본 영화감독들 일색이었고, 중국계(홍콩, 대만 포함), 인도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짧게 필리핀 영화 이야기.

그렇다 필리핀 이야기도 있는데 한국이 없었다.(절대 폄하가 아니고 부러움이었습니다.)

필리핀1.jpg


필리핀영화.jpg


아마도 작년 이후로 영화 역사책들 모두 개정판을 만들어야 할 걸 생각하면

흐뭇해지기만 한다.


이쯤 해서 아빠 마음을 이야기하자면


내 아이에게서는 내가 겪었던 스포츠나 문화적 열등감을 찾기 힘들다.

아주 당당하다.

내가 자랄 때와 너무 다르다. 자식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같은 이유 때문에 한국계 TV 스타 랜들 박(Randall Park)은

BTS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린 게 아닐까?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어릴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눈물까지 흘렸는데 전혀 창피하지 않았단다.

그의 우는 사진은 지금도 인터넷에 떠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유행이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 기록을 깼다.

드라마 보고 요즘 세태 너무 살벌하다며 한탄하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드라마가 가려운데 긁어줬고,

최소한 지금의 세태를 돌아보게 만들어 준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한국 드라마인 건 보너스 기쁨!!

저는 희망에 한 표 던집니다.


스포츠와 문화 부분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신 분들,

또는 하고 계신 분들.

한국의 위상을 높인 건 둘째치고 다음 세대들이 열등감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것.

국뽕 아닌 아빠 마음으로 진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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