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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Aug 23. 2021

내 인생 잡지

스크린 영화잡지

중학교 방과 후, 학교 앞의  문방구를 지날 때였다.

왁자지껄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운 상황이었는데,

뒷 덜미를 잡아 끄는.. 평소와 다른 무엇이 있었다.


학교 근처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인데도 발걸음을 잡는 그 무엇!

고개 돌려 보니,

집게로 집어 놓은 우중충한 학습 교재 사이에서 칼라 빛을 발산하는 것이 있었다.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걷는지 뛰는지 하던 차였지만

나는 칼라에 이끌려 문방구 앞으로 갔다.



영화 잡지 스크린 창간호

브룩 쉴즈가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중학생의 감수성을 휘젓는 아름다움이었다.

영화 잡지? 이런 잡지가 나오다니..

줄에 걸려 빨래집게에 의지하고 있는 잡지를 

감히 만져 보지도 못했다.


꼭 사야 한다! 


멍하니 서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친구들이 빨리 가자고 난리다.


뭐해? 가자고!! 친구들이 소리까지 지른다.


깜짝.. 몽상에서 깨서는 친구들 쪽으로 뛰어간다.


뭐했어? 도원이가 묻는다.


아니야.. 아무것도.. 괜히 창피해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브룩 쉴즈를 보고 있었다고 어떻게 말하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아 논 용돈을 챙긴다.

잡지가 얼마일까?

여성중앙 보다 비쌀까? 소년중앙보다는 비싸겠지?


다음 날, 하굣길에 친구들의 눈치를 살핀다.

혼자 조용히 사고 싶은데 기회가 안 생겼다.

같은 동네 사는 도원이 자식이 떨어질 줄 모른다.

내가 잡지를 사자마자 온 동네에 소문 낼 자식.

그리고 빌려 달라고 할 자식.

그리고 브룩 쉴즈 얼굴에 침을 묻힐 자식.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오늘은 포기.

다음에 사자.


다음 날부터 시작된 방과 후 눈치보기 작전.

하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다음 날도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웃고 있는 브룩 쉴즈 앞을 한숨 쉬어가며 지나쳐야 했다.


며칠이 지나고 그날도 친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웃고 있는 브룩 쉴즈와 눈을 마주치려는 순간,


엇! 브룩 쉴즈 어디 갔어?

너무 놀라 친구들의 눈치고 뭐고 문방구로 뛰어갔다.


"아저씨! 스크린 잡지 주세요!"


"없는데.."


"네? 없다니요?"


"다 팔렸는데.."


그날부터 스크린 잡지 3월호 찾기 삼만리가 시작됐다.


뭐가 그리 창피했는지, 동네 서점을 들어설 때마다 심호흡을 크게 해야 했다.


"아저씨 스크린 3월호 있어요?"


"없다!"


"아저씨! 스크린 3월호 있어요?"


"다 팔렸다!"


"아저씨! 스크린 3월호 있어요?"


"그게 뭔데?"


"새로 나온 영화 잡지요."


"몰라 없어"


동네 서점을 다 돌았지만 스크린 잡지를 살 수는 없었다.


도원이 자식을 원망했다. 1984년 봄이었다.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시간만 잘 간다.


방과 후, 그날도 친구들과 떠들며 교문을 벗어났다.


그리고,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피 마르소를 보게 된다.


태평양을 건너온 그때 그 소피 마르소



친구고 뭐고 무조건 문방구로 내달렸다.

아저씨!..  아저씨! 스.. 스크린 4월호! 주세요!!


창간호 매진에 감사하다네요.




영화에 굶주렸던 시절

영화를 글로 읽을 수밖에 없던 시절

결국에는 뉴욕으로 와서 영화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화잡지가 이런 영향력이 있을 줄..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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