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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Sep 18. 2021

지갑 속 그녀 1화

빗물 속 루이뷔통

주말의 비가 전혀 반갑지 않은 날이었다


아이를 플러싱 YMCA에 내려주고 바삐 나오고 있었다. 주차요금인 동전 두 개 아끼려고, 열 살 딸아이 

손 잡고 건물로 뛰어들었다가 뛰쳐나오는 게 토요일마다의 일상이다. 

주말이지만 남들이 느끼는 여유는 없다. 맞벌이 부부라 토요일 아이의 스케줄은 내가 챙긴다. 좀처럼 

적응 안 되는 아이의 매니저 노릇이다. 아이가 하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제법 내리는 비 때문인지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커피 생각을 하며 건물을 나와 차 쪽으로 뛰고 있었다. 

설마 주차 딱지가 붙어 있지는 않겠지... 차 쪽으로 고개를 내 빼고 뛰는데.. 떨어져 있는 지갑이 보인다. 


루이뷔통 지갑이 흐르는 빗물을 버티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우산에 얼굴 가린 사람들, 아이와 실랑이하는 부모, 비에 쫓기는 사람들.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지갑을 빠르게 주워 차에 뛰어오른다. 가슴이 뛴다. YMCA 건물을 살핀다. 

보안용 카메라가 몇 개 보인다. 하지만 길 가장자리에서 빗물을 버티던 지갑이 카메라에 잡혔을 리 없다. 

더구나 나의 우산은 등 뒤를 가려주고 있었다. 다른 이는 내가 지갑을 주웠는지,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지갑을 YMCA에 맡겨야 할까? 하지만 지갑 주인이 YMCA에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차의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한다. 지갑을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슴이 떨려 운전에 집중이 안 된다. 


몇 블록을 운전하다가 눈에 띄는 세븐 일레븐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비가 좀 전보다 거세졌다. 

차창을 때리는 비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조여오던 가슴에 여유가 생긴다. 호흡을 길게 내뿜었다.


옆자리 발판에 던져 놓았던 지갑을 집어 든다. 화장지로 지갑의 물기를 닦아낸다. 물에 젖어 뻑뻑한 지퍼를 열었다. 루이뷔통이라 그런지, 지갑 안은 별로 젖지를 않았다. 한쪽 귀퉁이가 젖어있을 뿐이다. 현금을 꺼내 본다. 십 불, 이십 불, 오십 불..., 구십 불이 들어있다. 일 불 짜리는 없다. 지갑의 틈틈을 젖힌다. 

YMCA의 회원증이 있다. 회원증에는 생년월일이 없다. 이름은 단양. 

다른 신분증은 눈에 안 띈다. 흔해 빠진 크레디트 카드도 없다. 지갑 안 지퍼를 연다. 

옛날 사진이 한 장 있다. 십 대 후반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기도 하는 단발머리의 여자.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여자다. 목 주위에 작은 레이스가 달린 감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다. 

원피스는 무릎 바로 위에 멈춰있다. 

어느 호텔이나 식당의 로비 같은 배경. 사진의 뒷면을 본다. 1988년 4월 21일 향항 이라고 한자로 

쓰여있다. 홍콩이다. 홍콩 사람이다. 

사진을 돌려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눈썹까지 내려진 앞머리, 짙은 눈썹..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보이는 커다란 눈, 똑똑히 솟아있는 코, 씹는 데 적합해 보이지 않는 작은 입. 





1988년 4월..., 나는 대학교 신입생이었다. 처음 맞는 오월 축제의 기대로 가슴 설레던 때였다. 

사진 속 주인공은 그때,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홍콩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플러싱 YMCA에 다니고 있다. 

볼수록 아름다운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연상일까? 연하일까? 호기심은 커져만 간다.

세차게 앞유리를 때리 던 비가 차츰 멎어진다.

딸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사진, YMCA 회원증구십 나는 지갑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정도 미모의 여자는 쉽게 찾을 수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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