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환상

놀 때는 놀고 보자

by Henry Hong

지난주, 우리 식구는 보스턴에 다녀왔다.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보스턴은 역사, 문화, 상업. 산업의 중심지이다.

역사 시간에 배운 대로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 본토로부터의 차 수입을

저지하기 위해 영국적 선박을 습격하고 차 상자들을 바다에 폐기한 사건이 벌어진 곳.

이 사건은 후에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가 된다.


지금은 하버드대학, 버클리 음악대학, 보스턴칼리지, 보스턴대학, MIT 등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이가 대학 갈 때가 되어 시간 나는 대로 학교 탐방을 하고 있다.

집 떠나 4년은 있어야 하는 곳

부모품을 떠나 첫걸음을 시작할 곳

어쩌면 인생이 희극이 되느냐? 비극이 되느냐?를 결정할지도 모르는 곳

신중할 수밖에 없다.


뉴욕을 떠나 차를 4시간 정도 운전 해 보스턴 칼리지(Boston College)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기온까지 낮았다.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캠퍼스 구경을 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한적한 학교가 을씨년스러웠다.

캠퍼스 구경을 하고는 학교 관계자를 만나 입시 설명을 들었다.

역사가 있는 학교답게 학교 자랑이 많았다.

그중, 구내식당 자랑이 많았다. 왜냐고 묻지 마세요.

저도 궁금합니다.


보스턴 칼리지를 나와서는 보스턴 시내로 들어 가 보스턴 대학(Boton University)을

둘러봤다. 시내의 학교라 그런지 뉴욕의 NYU를 연상시켰다.

캠퍼스 자체로는 멋없이 느껴졌다.

학교 옆으로 흐르는 찰스 강이 학교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 강변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달렸었다지..


예정됐던 두 학교 구경을 마치고 퀸시마켓 쪽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늦은 점심을 하려던 차였다.

퀸시마켓 쪽으로 오니 예상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오늘은 핼러윈 주말이었다.

거리는 슈퍼 히로부터 그리스 신, 피 칠을 한 살인마 까지..

개성 있게 분장한 젊은이들로 인산인해였다.

싸늘한 날씨를 비웃듯 젊음의 열기가 거리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젊음이 좋긴 좋구먼..

이런 날씨에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웃을 수 있다니..




젊은이들은 각양각색의 개성으로 핼러윈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슈퍼 히로로 분장한 이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며 지구를 지키겠다고 하고,

어느 학교 연극반쯤 되는지 남북전쟁 당시의 모습을 연극으로 재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식당을 찾으려는 것도 잊고, 이 거리 저 거리 구경을 했다.

내 나이도 잊은 채 분위기에 상기되었다.

옆의 아들을 곁눈질로 보니 이 애는, 지금 당장 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마냥 아쉬운 얼굴이었다.



뒤늦은 식사라 맥주도 한 잔 할 겸, 자리를 펍(Pub)으로 잡았다.

실내는 기분 좋은 요란함으로 흥청거렸다.

드라큘라가 주문을 받아갔다.

보스턴의 자랑 사무엘 아담스 맥주를 가져다준 건 슈퍼맨이었다.

음식을 가져온 건 미라.

이미 분위기에 취해 미각이 상실된 상황

뭐든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젊음의 열기를 느껴서인지 내 학창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놀 때는 잘 놀았던 거 같은데.. 분위기는 언제나 어두웠던 기억.

자주 가던 술집, 카페, 나이트클럽, 극장.... 모든 곳이 어두웠다.

그 많던 대화의 주제도 어둡기만 했다.

걱정뿐이었던 걱정에 의한 걱정을 위한 이야기들

군대, 연애, 가족, 시험, 직장.. 모든 한. 일 전, 올림픽에 월드컵 걱정까지..

지금 생각해보니 어차피 놀 거 걱정이나 접어두고 놀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보스턴 거리의 젊은이들이라고 걱정이 없겠는가?

일단 놀고 보는 거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잖아!


괜히 또 아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아들아! 놀 때는 놀고 봐라

절대로 놀면서 걱정마라

걱정할 바에는 놀지를 마라


아들에게 하루 놀고 일주일 고생한 경험은 이야기 안 했다.

괜히 어린 아들 기죽일 일 있습니까?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은 하버드와 MIT 구경을 했다.

어제와 달리 쾌청한 가을 날씨가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낙엽이 적당히 깔린 하버드 캠퍼스는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주말의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학생들이 조깅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역시 공부 잘하는 것들은 체력을 키우나 보다.

하버드1.jpg



맑은 날씨와 반대로 아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버드 교정으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말을 안 하다가 뉴욕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

우리가 좋은 대학들 구경한다고 너에게 부담감 주려는 게 아니야.

이름 있는 학교에 합격하든가? 말든가?

우리 가족 추억거리 정도는 만들었잖아.

절대 부담감 갖지 마!

원래 부모들은 자식에게 환상을 갖는 법이다.

네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빠에게 환상을 갖으셨었지....


이 대목을 얘기할 때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아무튼 저희 가족 보스턴 잘 다녀왔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