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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24. 2021

아내의 우정

아내는 통화 중

요즘 아내가 전화기를 붙들면 쉽게 1시간을 넘긴다.

워낙 좁은 집이기에 통화를 시작한 아내는 나와 아들을 피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또는 거실로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와 아들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가 틀림없다.

숨겨야 할 비밀이 생긴 건가? 아줌마들의 수다가 늘어가는 건가?

솔직히 별 관심이 없었다.


별 관심 없던 아내의 통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가도..

저녁을 먹다가도.. 

전화가 오면 전화기로 달려가는 거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을 걸 준비하다가 두 손 놓다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전화의 상대방은 아내의 베스트 프랜드, 리사였다.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고 아내와 같은 중, 고등학교를 나온 필리핀계 여자.

지금은 결혼을 해, 뉴욕과 시차가 2시간이나 나는 유타주에 살고 있다.


시차까지 있는 곳에 사는 사람이 왜 뻔질나게 전화를 해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방해해!

그것도 한 번 전화기를 잡으면 세월아.. 네월아!


리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단다.

친구가 없는 리사를 도와줘야 한단다.


저녁을 망치는 것에 화가 난 나는 무슨 이유 건 그럴듯해야 한다며 이유를 묻는다.


리사의 남편 브랜든이 바람을 피우는 거 같단다.

상대는 대학교수인 브랜든의 대학원생 제자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브랜든은 190 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잘생긴 아일랜드계의 백인이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리사의 불안도 이해는 됐다.


바람피운 증거가 있냐고 물으니 있단다.

그 증거라는 게,

그 제자와 함께 있다가 귀가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단다.

리사가 단도직입 적으로 무슨 관계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교수와 학생의 관계일 뿐, 더도 덜도 아니란다.

그런데 주말에도 만나?

남자인 내가 봐도 의심이 간다.

의심하는 리사에게 짜증을 내기까지 한단다.

일 열심히 하고 있던 남편이라면 아내의 의심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 같다.

그게 아니라면 최선의 방어인 공격을 한 것일 테고..

원래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법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냐고 물었다.


아직은 심증뿐이고 증거가 없으니,

먼저 기분 나빴던 감정을 솔직히 브랜든에게 얘기하고,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갖으라고 했단다.

주말 요리는 브랜든이 좋아하는 것으로 신경도 쓰고,

조금 더 관심 갖는 태도를 취하라고.. 

참고로 이 둘은 아이가 없고 브랜든이 2살 연하다.


내가 이해 못 하겠는 것은 

아니 저 얘기를 며칠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했단 말이야?

길게 얘기해도 30분이면 될 레퍼토리 아닌가?

아내에게 내 느낌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언제나 비슷한 아내의 반응

일단 한숨을 내쉰다.

참을성이 보이는 얼굴, 아들에게 대하는 표정으로 최대한 천천히 이야기한다.

실제로 하는 조언은 거의 없다.

그저 리사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란다.

속시원히 이야기하게 놔둔단다.

들어주기만 해도 리사에게 힘이 된단다.

그게 리사에게 힘이 되어주려는 아내의 우정이란다.


조언 없이 친구의 고민 들어주기.

나는 그동안 쓸데없는 조언들을 남발한 건 아닐까?




리사와 브랜든은 결혼생활 부부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상담 비싸지 않을까? 했는데

미국식이라 그런지

결혼생활 상담이 의료보험에 포함되어 있단다.

우리 집 보험도 상담이 포함되어 있으니, 한 번 받아보겠냐며

아내가 눈 흘기며 묻는다.

아니 치과 진료 조차 옵션으로 선택해야 하는데

결혼 생활 상담이 포함되어 있었어?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미국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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