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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07. 2021

네 팔자가 그렇단다

쇼핑의 공포

살면서,

어울리 건 안 어울리 건 숱한 옷을 입어 봤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당연히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속옷부터 겉옷까지 내가 구입한 건 단 하나도 없다.


나이 오십을 넘겼는데, 직접 옷을 사본 기억이 딱 두 번이다.


첫 번째는 겨울에 도착한 뉴욕에서 여름을 보내려니 여름옷이 필요했다.

홍콩 친구들과 아웃렛이라는 곳을 따라가

청바지 하나와 반팔티 몇 개를 사봤다.

두 번째로 손수 구입해 본 건

바닷가에 갔는데 수영복을 잊고 안 가져가,

근처 가게에서 수영복을 산 거다.

10여 년 전 수영복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 옷을 사본 적이 없다.


그럼 도대체 옷은 어디서 난 거야?


어릴 적, 당연히 어머니가 사주는 대로 입었다.

스타일이고 뭐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가끔 시장이나 백화점을 따라 가봐도

딴청 하는 나를 세워놓고 어머니는 옷을 나에게 대보거나 하시고

그냥 구입을 하셨다.

"사기 전에 한 번 입어 봐!"라는 말에 울면서 싫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더니

그다음부터는 입어보라고 하시지도 않았다.

내가 유별나긴 했나 보다.


태어나서부터 입으라는 거 계속 입던 습관은 관습처럼 굳어졌고

(사실 관심도 없었고)

유학을 와 있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어머니가 한 무더기 옷을 사셔서 뉴욕으로 보내 주셨다.

보내주는 사람이 스타일을 신경 썼을지는 몰라도,

입는 나는 스타일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던 가게 사장이 

"미스터 홍, 옷을 좀 뉴욕 스타일로 입어야겠어.. 잘못하면 강도 만난다고!"

"에이.. 설마요."


어느 날은 여자 후배가

"선배는 옷을 어디서 사요?"

"나? 엄마가 주는 대로 입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무슨 때가 되면.. 지인들에게

생일이라던가.. 무슨 기념일 같은 때, 옷 선물을 많이 받았던 거 같긴 하다.


결혼을 한 후에는 아내가 사주는 대로 입고 있다.


"나 긴팔티가 좀 필요한데.. "

"추워지는데 오리털 파카 같은 거 있어야겠다."

정도의 이야기만 한다.

짐꾼이 필요하니 가끔 쇼핑을 따라나서기도 한다.

그럼 나는 커피숍이나 어디 벤치를 골라 앉아 주인 기다리는 애완견 마냥 아내를 기다린다.

쇼핑 끝났다고 전화가 오면 달려간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아내가 입어 보라면 입어는 본다.

싫다고 울 나이도 지났고, 일단 안 맞는 옷을 사면 바꾸기가 귀찮고 재봉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뉴욕 롱아일랜드의 쇼핑몰



나는 직접 옷을 사본 적이 두 번 밖에 없다.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 해도 기억이 없다. 

어릴 적, 옷가게가 즐비했던 남대문 시장이 싫었고

지금의 롱아일랜드 쇼핑몰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때는 사람 많은 쇼핑몰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공황장애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쇼핑몰이나 시장이 싫을 뿐이지..

그 보다 사람 많은 경기장, 박물관, 극장은 잘도 다닌다.

그냥 옷 사러 다닌다는 게 귀찮고 싫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며 옷장 정리를 했다.

얇은 옷들을 챙겨 넣고, 두꺼운 옷을 꺼내다 보니,

입던 옷들이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런 옷도 나에게 있었나? 이건 어디서 난 거야?

갑자기 옷에 관심이 생긴다.

인터넷으로 중년 남자의 스타일을 검색한다.

이런 게 나한테 어울릴까?

이건 어울릴 거 같기도 한데?

혼자 중얼거리며 옷 평가를 한다.

요즘은 인터넷 쇼핑이 있으니 쇼핑몰 갈 필요도 없잖아. 일단 질러봐?

인생에 변화를 줘봐?

아내에게 옷에 대한 질문을 해본다.

나보고 갱년기라는 예상 못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래저래 이번 생에 옷 쇼핑은 아닌가 보다.



예전에 어머니가 하신 말씀

"네 팔자가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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