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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Oct 13. 2021

여행을 이 따위로?

동상이몽

여행지가 결정된다.

여행지가 결정된 후부터 열공모드에 돌입한다.

꼭 들려야 할 곳을 정하고

주위의 맛집 검색을 시작한다.

메모를 해가며 아침, 점심, 디저트. 저녁, 스낵의 메뉴를 살핀다.

어떤 이유로 맛집에서 못 먹을 상황을 대비해 유사시 메뉴까지 훑어본다.

먼저 여행자들의 리뷰도 꼼꼼히 읽는다.

그다음은 동선 파악이다.

그때그때 이동 중에 들릴 수 있는 곳들을 살펴본다.

쇼핑하는 걸 즐기지는 않더라도 윈도쇼핑하며 사진으로 남기는 걸 좋아한다.

하루에 3만 보 걷는 걸 두려워 않는다.


내가 원하는 여행.. 절대 이렇지 않다.

나와 같이 사는 아내가 여행을 이 따위로 한다.



여행지가 결정된다.

근처 박물관이나 미술관 정도를 검색한다.

먹을 것? 걷다가 보이는 곳에서 아무거나..

남의 해주는 음식, 다 맛있지 않나요?

낮술을 좋아하고 주종을 안 가리니 그것 역시 아무거나 발 닿는 대로..

창밖이 보이는 조그만 식당이나 노천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며

공상하는 게,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이러고 앉아있을 거 여행 왜 왔냐는 아내의 핀잔

이러려고 여행 왔는데 무슨 말씀이신지요?




우리 부부 싸울 일 별로 없다.

솔직히 싸울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싸우면 서로 손해라는 걸 안다.

욕구가 있어야 열정이 생겨 싸워보는 거 아닐까?

은희경 작가님께 배웠습니다.


우리 부부 작건 크건 여행만 가면 싸운다.

갑자기 욕구와 열정이 충만해지며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나보고 게을러서 여행도 못한단다.

나는 뭐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냐고 쏘아붙인다.

(이 얘기를 영어로 해야 했습니다.)


요즘 시국에 여행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간혹 아내와 지난 여행의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이야기해본다.

아이스크림 가게 찾다가.. 인도 식당 찾다가.. 대판 싸웠던 일들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그리움들

이 따위고 저따위 건 간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내년은 우리 부부의 결혼 20주년


아내가 여행 계획을 세워 보겠답니다.

버리고 올까 봐 그냥 잘 따라갔다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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